메뉴

[사람속으로] 제10호 경상남도 자원봉사왕 이숙이 씨

“봉사는 나에게 보약”… 매일 보약 먹는 봉사왕

1982년부터 36년간 봉사활동

기사입력 : 2018-12-20 22:00:00


그녀는 어디에나 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교동마을, 넒게는 단성면, 더 넓게는 산청군에도 있다. 경남 어디에선가 그녀를 만날 수도 있다. 제10호 경상남도 자원봉사왕 이숙이(69)씨.

메인이미지
10호 경남도 자원봉사왕으로 선정된 이숙이씨./김승권 기자/

1982년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느덧 36년이 넘었다. 그녀에게는 직함이 많다. 산청군새마을부녀회로 활동을 시작했고, 단성면 회장을 지냈다. 산청군생활개선회 총무와 회장을 거쳤고, 산청군여성팔각회에서는 총무를 거쳐 회장을 지냈다. 적십자산청지구협의회 단성면 총무를 지냈으며 단성면자원봉사회 총무와 부회장을 거쳐 회장까지 했다. 산청군자원봉사협의회회장도 맡고 있다. 이 모든 단체에서 지금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등불회 회원이기도 하다.

교동마을에서 혹은 단성면에서, 산청군에서, 경남도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봉사활동을 한다. 부르면 달려간다. 누구보다 앞장서고 누구보다 살갑다.

이 회장을 만나서 여러 번 놀랐다.
메인이미지
이숙이씨가 교동마을 회관에서 어르신에게 단감을 깎아주며 웃고 있다.

우선 악수를 건네는 그녀의 손에 힘이 넘쳤다. 웬만한 남자보다 손아귀 힘이 세다. 일을 많이 한 이가 틀림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교동마을회관에서 만난 그녀는 회관에 모여 앉은 어르신들에게 동생이자 딸이다. 그녀가 오면 마을회관은 활기로 가득 차고 금세 웃음이 넘쳐난다.

누구보다 봉사활동에 매진하지만 그 봉사활동이 바로 그녀를 일으켜 세운 힘이자 그녀를 지탱하는 힘이다.

“승균이 아빠 나 보약 먹고 올게요. 집 잘 보고 있으이소.”

봉사활동을 ‘보약’이라고 말하는 그녀. 집을 나설 때면 거실에 걸린 남편 영정에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녀의 고향은 함양이었다. 교동마을에 온 것은 1978년, 당시에는 미신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큰아들이 많이 아팠다. 아들 살리려면 고향을 등져야 한다는 말에 낯선 산청으로 이사를 왔다. 그렇게 잘 사는 듯했지만 그녀가 마흔여섯 될 무렵 남편이 세상을 등졌다.

“잠깐만 살다가 가려고 했는데 이리 됐네. 남편이 세상 버리고 한 달 동안 방에서 울었어. 타향에서 의지할 곳도 없고 눈물만 나오더라.”

그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이웃들이 다독이고 달래도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다. 그녀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건 농촌지도소에 근무하던 공무원들이었다.

“형편도 어렵고 하니 자주 들여다봐 주고, 힘내라고 했지요. 이럴 때일수록 활동도 더 열심히 해야지 하면서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아입니까.”

이미 새마을부녀회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지만 남편과 사별 후 자신을 추스르면서 봉사활동에 더 매진하게 됐다.

“봉사가 우리 애기 아빠라 생각하고 한 기라.”

외톨이 ‘함양댁’을 놀래킨 사건이 있었다.

“농사도 손에 안 잡히고 양파 밭에 풀이 그대로 있었제. 근데 시장 갔다가 오니까는 양파 밭에 풀이 없어. 어떤 도깨비가 그랬노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풀을 다 매준 기라. 그때부터 어무이 어무이 하고 가족이 됐지.”

그녀가 봉사활동으로 바쁠 때 이웃들은 그녀의 집안일이며 농사를 거들었고 그렇게 함양댁과 교동마을 사람들은 한 가족이 됐다.
메인이미지
이숙이씨가 산청군 단성면 교동마을 회관에서 어르신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봉사활동. 언뜻 거창해 보이지만 그녀의 봉사활동은 늘 그곳에 있고 앞장서서 하는 부지런함이다. 독거노인 생신상 차려드리기, 밑반찬 나눔, 김장 나눔, 사회복지시설 목욕봉사와 말동무 등 소소하지만 확실한 나눔이다.

저공해 천연비누를 만들어 이웃사람들과 나누고, 마을에 꽃길 만드는 일도 돕고, 바자회도 열었다. 인근 학교에 장학금도 기부하고, 독거노인들을 모시고 나들이도 간다. 낯선 타향에 시집 온 외국인며느리들을 위해 아기도 돌봐준다. 도배며 벽지 바를 때도 그녀는 주저않고 돕는다. 수능시험을 칠 때면 어김없이 따뜻한 차를 준비한다.

지역의 축제나 행사에도 그녀는 있다. 아니 그녀를 찾는다. 산청한방약초축제, 산림문화박람회, 장애인래프팅, 자원봉사 대축제, 우리 동네 그린존 만들기 등 축제나 캠페인마다 그녀는 달려간다. 태풍 피해 복구에도 참여하고, 2008년 태안에 기름유출 사고 때도 서해까지 봉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녀의 소지품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수첩이다. 그야말로 빼곡하다.

12월 1일 논두렁밭두렁 행사, 3일 군 행사 준비, 4일 군협의회 행사, 6일 산엔청, 7일 신안면사무소, 11일 경남도 자원봉사대회, 12일 떡국봉사, 19일 생활개선연구회 행사, 20일 이장회의, 꽃꽂이봉사, 26일 대동회. 하루에 몇 번이나 교동마을과 단성면, 산청군을 오가는 때도 많다.

상도 많이 받았다.

1983년에 새마을부녀회 활동으로 도지사상을 받았고, 1992년에는 생활개선회 봉사활동으로 내무부장관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팔각회 활동으로 도지사상을 받았고 대한적십자총재상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산청경찰서장상, 2012년에 도지사상, 2014년에 산청군수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경남도 자원봉사자 대회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고, 지난 4일 제10호 경상남도 자원봉사왕에 선정되기도 했다. 10월 말까지 그녀의 봉사활동 실적은 2221시간 30분이다.

“봉사 댕기는 게 내 보약 먹는 거거든요. 오라카는 데 있으믄 열심히 쫓아다니는 거지 뭐. 이번 주고 다음 주고 천 가지 만 가지 쫓아다니는 게 너무 재미나. 보약 먹으러 다니는 거지.”

그녀는 봉사활동을 자신에게는 보약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봉사활동이 이웃사람들에게 정말로 보약이 되는데 말이다.

차상호 기자 cha83@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차상호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