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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주군을 방패막이 삼은 ‘호위무사’-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부장)

기사입력 : 2019-01-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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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미국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연방 하원의원 5명이 워싱턴 주재 수단 대사관 앞에서 시위 중 체포됐다. 수단 대통령이 다르푸르 학살사태와 관련해 국제 구호단체에 추방령을 내린 데 항의하던 이들이 ‘폴리스 라인’을 넘자 경찰이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에게도 똑같이 법을 적용해 주목받았다.

지난해 연말 공분을 샀던 더불어민주당 김정호(김해을) 의원의 ‘공항갑질’ 정황과는 대비된다. 신분증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달라는 24살 비정규직 공항 보안요원에게 국회의원 신분을 과시하며 욕설 등 고압적 행동을 한 의혹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8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 의원 사퇴와 구속수사 등을 촉구하는 글이 83건이나 올랐다.

“오히려 갑질을 당했다”고 항변하던 김 의원은 당시 정황을 적은 보안요원 진술서가 공개되자 그때야 고개를 숙였다. “교묘하게 편집·과장됐다”고 비난했던 언론 보도에 대한 해명도 없었다. 보안요원에게는 “아들뻘인…”이라는 사족을 달고서 사과했다.

대국민 사과 하루 전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갔다. 국토교통부가 김해신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자신과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음모론을 폈다. 궁지에 몰리자 대통령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친문(친문재인)의 적극적 엄호로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란 간절한 바람이었는지 모르지만 역풍은 거셌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미온적이던 당 지도부도 유감을 표하고 김 의원을 소속 상임위인 국토위에서 빼는 등 뒷수습에 진땀을 흘렸다.

제주시 추자면 출신으로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김해와는 아무런 지역 연고가 없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후 봉하마을로 함께 와 영농법인 대표이사를 지낸 게 전부다. 이때 노 전 대통령 ‘호위무사’란 별칭을 얻었다. 엄밀하게는 ‘노무현 음덕’으로 ‘배지’를 단 셈이다. 너무 쉽게 당선돼 자리의 무게를 간과했다는 수군거림이 나오는 연유다.

그는 문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호위무사’의 민낯을 확인했다. 위기에서 오히려 주군을 방패막이 삼았다. 지난해 연말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인 45.9%를 기록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는 김 의원 ‘공항갑질’에 따른 여론 악화도 주요인으로 꼽았다.

김 의원은 사건발생 초기 해명자료에서 “지역 일정 등을 위해 일주일에 많게는 6회까지 공항을 이용한다”고 했다. 의정활동 상당 시간을 지역구에 할애하고 있다. 선거구에 자주 얼굴을 들이밀면 재선 당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린 듯하다. 지역의 민감 현안인 김해신공항 건설 문제점을 파헤치겠다며 검증단장까지 맡았다. 이처럼 공들인 단장 역할도 국토위에서 쫓겨나면서 상당 부분 동력을 상실할 것이란 관측이다.

그는 국회의원 당선 후 “특권과 반칙이 없는 의정활동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반칙왕’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지지표를 던진 유권자에게 모멸감을 안겼다. “한 인간의 인격을 시험해 보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If you want to test a man’s character, give him power.)”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고언 (苦言)이다.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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