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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스카이 캐슬’과 체육계 폭력- 김태희(다산연구소장)

기사입력 : 2019-01-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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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모든 걸 감수하시겠습니까?” 카리스마 넘치는 코디 김주영(김서형 분)이 묻는다. 부모 한서진(염정아 분)은 파멸에 이른 가족 이야기에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지만, 자식을 S대 의대에 보내고 싶은 바람에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한다. 오로지 S대 의대 합격이라는 지상 과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결과만 좇는다. 그런 가운데 학부모는 자식을 경쟁의 아수라장으로 내몰고, 수험생 또한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괴물이 되어 간다. 김주영이 학부모에게 가혹하다 싶은데, 그는 오히려 부모들을 “자식을 내세워 제 욕심 채우는 것들”이라며 비웃는다. 사실은 그 자신이 그랬다. 최종회를 앞둔 ‘스카이 캐슬’이야기다.

드라마에서처럼 심각하진 않더라도, 반성해볼 일이다. 부모 자신의 과도한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식에게 집착하고 자식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닌지.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것이야” 말하면서. 이 드라마가 인기 있는 것은, 과장도 있겠지만 공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몇 번 늪에서 빠져 나오려다 말았던 한서진이 마지막 순간 정신을 차렸다. 더욱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는 것을 정지시켰다. 드라마는 다행히 파멸의 행진을 멈췄는데, 우리의 체육계는 작금의 상황을 과연 멈출 수 있을까. 우리의 체육계는 김주영 같은 코디들이 좋은 성적을 내며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코디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우리의 체육계는 그런 코디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심석희 선수의 용기 있는 폭로로 빙상계를 비롯한 체육계에 미투가 번지고 있다. 드러난 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또 다른 2차 피해로 이어질까 두려워 쉽게 폭로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금메달 획득이라는 지상 과제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결과만 쫓는다. 그런 가운데 폭행도 불공정도 묻혔다. 금메달이 국위선양이고 애국이었다. 금메달만 획득하면 모든 것이 보상으로 돌아왔다. 빙상계의 권력자로 알려진 아무개씨는 자신의 책에서 “체벌이 있어도 믿음이 있으면 문제되지 않는다”고 썼다. 폭행을 하고도 말한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나만 믿어!” 다른 선택지가 없는 선수는 믿어야 했고, 부모는 참아야 했다. ‘스카이 캐슬’의 판박이다.

이제 결과만 따지는 보상체계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는 체육계에서 확실히 배제하고 동시에 피해자는 확실히 보호해야 한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체육계의 폭력문화를 종식시켜야 한다. 체육계에서는 폭행이 일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나 의심이 있다. 아무래도 신체활동이 주가 되고 신체 접촉이 빈번한 특성상 그럴 개연성이 높다. 간혹 체육대학을 비롯한 대학생 신입생 환영회에서 폭력으로 물의를 일으키는데, 체육 분야에서는 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폭력이 일상화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라면 지도자 역할을 맡을 때 자연스럽게 폭행에 의존하게 된다.

폭행과 성폭력 사이에 결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으나, 그 간격은 가깝다. 폭행은 쉽게 성폭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강도 높은 훈련을 명목으로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함부로 폭행을 일삼는 문화 속에서 성폭행은 훨씬 자행되기 쉽다. 폭력문화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스포츠계의 미투 운동이 이번에는 변화를 일으킬까. 이미 10년 전 2008년에 그런 고발이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가해 코치는 다시 돌아오는데, 피해자는 못 견디고 떠나야 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이제 결과만 보고 모든 걸 덮지는 말자. 폭행과 성폭력으로 얼룩진 금메달이 어떻게 국위를 선양할 수 있겠는가. 성적이 좋은 운동선수가 운동을 즐기고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어야 그런 선수를 둔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고 우리도 함께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사이코 코디는 아웃되었다. 체육계의 범죄 지도자들은?

김태희 (다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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