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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우리나라 최고 한문학자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소장

“우리문화 담긴 한자, 한 자 한 자 읽고 쓰며 이어가야죠”

기사입력 : 2019-01-31 22:00:00


진주시 상대동에 위치한 ‘동방한학연구소·실재서당’에서는 매주 월요일 밤과 수요일 오후 한문 경전 읽는 소리가 창밖으로 흘러나온다. 2017년 정년 퇴임한 허권수 경상대학교 명예교수가 이곳에서 한문 한자 강좌를 열기 때문이다.

허권수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한문학자이다. 그의 스승인 연민 이가원 선생은 만년에 “허 교수가 나보다 나은 것이 많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성균관대학교 정범진 전 총장은 허 교수를 성균관대로 초빙하려고 하면서 “지금 대한민국에 살아 있는 사람 가운데 한문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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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 동방한학연구소장이 스승인 고 이가원 선생이 쓴 ‘실사구시’ 글을 살펴보고 있다.

퇴직한 뒤에 더욱 바쁜 허권수 교수를 만났다.

허 교수는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간 경상대 중어중문학과에서 근무했고, 1987년 한문학과를 직접 만들어 1988년부터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다른 것은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오직 글 읽고, 쓰고, 강의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입니다. 이런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했는데, 그래서 퇴직 후에도 명예교수로 추대되고 학교 비슷하게 연구하고 강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이것이 동방한학연구소와 실재서당입니다”.

허권수연학후원회의 도움으로 대학 연구실에 있던 자신의 장서 4만여 권을 동방한학연구소로 옮겼다. 대형 트럭 3대 분량으로, 이를 정리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원래 집에 있는 3만 권도 다 옮겨 합쳐 놓으려고 했는데, 서당에 공간이 없어 한 권도 옮겨오지 못했다.

실재서당은 한문을 배우려는 사람을 위해 매주 월요일 밤 자치통감강목, 선현들의 문집, 한시, 문장 등을 강의한다. 또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소학과 우리나라 역사서인 해동야언 등을 가르친다. 두 반 합쳐서 수강자는 60명쯤으로 교수, 대학원생, 대학생, 향교 유생, 일반인 등 다양하다. 수강료 등 어떤 대가도 받지 않는다.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고, 우리나라 전통문화 전수를 사명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허 교수가 이렇게 한문 강의에 열중하는 데는 그의 확고한 철학 때문이다. 허 교수는 “한자 한문은 우리 민족의 문화이다. 중국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며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쓴 역사가 오래된다. 한자는 중국 사람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도 함께 참여했다. 우리가 자진해서 우리 것이 아니라고 중국에 넘겨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지금 한자를 모르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어휘 수준은 형편없습니다. 20년 전까지는 일반 성인들이 대화하는 동안 소용되는 어휘가 4500단어 수준이었는데, 한자를 모르는 요즈음 성인들이 대화하는 데 소용되는 어휘는 1700단어 수준으로 줄었습니다”라면서 “지금 우리말에 외래어가 범람하는 원인도 한자를 안 쓰는 데 있습니다. 한자를 안 써서 조어가 안 되니까, 외래어가 그대로 범람하고 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말이 없어질 위기가 다가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한자는 중국의 문자가 아니고 동양의 공통문자라는 것, 따라서 동양 각국과의 소통에도 한자 학습은 필요하다는 게 허 교수의 지론이다.

그런 그의 발길을 기다리는 곳은 너무나 많다. 경상대학교 재직 시절 인연을 맺어 온 곳인데 퇴직 후에 많아진 시간을 할애해야 할 곳들이다. 경남신문에 16년째 매주 연재하는 칼럼 ‘한자로 보는 세상’도 800회를 향해 가고 있다.

다른 대학, 박물관, 시군 문화원, 향교, 서원, 유림단체, 전통문화동호회 등에 강의나 강연을 나간다. 주로 대학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다가, 학교 밖으로 교화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넓게 학문을 전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 학문과 전통 유학의 접맥, 전통유교문화 보급을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허 교수에게 각종 비문, 문집 서문, 기문 등의 찬술, 문집의 번역, 편집 등의 일을 요청해 오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대부분 마다하지 않고 응하고 있는 편이다. 원고를 써서 번 돈은 은사의 학문을 연구하는 연민학회, 한문학회, 학술단체, 유림단체, 장학금 등의 지원에 환원한다.

허 교수가 소장한 한문학 관계 장서는 7만 권이 넘는다. 실재서당에 4만 권, 집에 3만 권 정도 소장하고 있다. 그의 각별한 책 사랑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책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학자는 책이 생명이기 때문에 책 없이는 연구를 못합니다. 책이 갖춰져 있으면 연구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이 많은 사람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소매가 긴 옷을 입으면 춤추기가 쉽고, 밑천이 많으면 장사하기 좋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책은 곧 자기의 생명이고 본인이 쓴 글은 자식과 같다는 허 교수는 1983년 조선왕조실록을 200만원에 구입했다. 당시 그는 3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요즘도 중국에 갈 때마다 대형서점에 들러 200~300권의 새 책을 사 온다. 국내 서점에도 자주 들러 한 달에 몇백 권의 책은 꾸준히 산다. 그의 지갑에는 10여 장의 카드가 꽂혀 있는데, 북경의 8대 대형서점의 할인카드다. 중국 갈 적에 혹 빠뜨리는 경우가 있어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허권수 교수는 자신의 7만여 권의 장서를 통해 후진 양성에 도움이 되는 곳이 있으면 선뜻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제일 좋은 것은, 한문학에 평생을 바칠 수 있는 소수정예의 학자를 길러 우리나라 한문학을 계승했으면 하는 게 허 교수의 생각이다.

장서와 함께 후진을 기를 수 있는 연수 기능을 갖춘 연구공간이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기증할 생각이라는 것. 실제 국내외 대학을 비롯해 진주시 등 몇몇 지자체에서 허 교수의 장서를 기증받기 위해 의사를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 교수는 “저의 장서는 제가 모았지만 개인의 것은 아닙니다. 월급이나 원고료로 장만한 것이지만 제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한 누구에게 주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받고 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만약 경비가 해결된다면, 한문학연구원을 만들어 한문학을 연구하고, 계승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특히 부속 한문연수원을 지어 소수 정예의 전문가를 양성하고 싶어요. 숙식을 제공하면서 학비 없이 최소 5년 이상 한문학 하는 데 필수적인 교과서를 성실하게 읽어 진정한 한문학 전문가를 키우고 싶습니다. 저의 장서도 그 일 하는 데 활용되면 가장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글·사진= 강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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