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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아픔을 줬다면?- 서영훈(사회부장·부국장)

기사입력 : 2019-02-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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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석(痛惜)의 염(念). 지난 1990년 일왕 아키히토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 방일 때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 한 말이다.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라고 한, 사과인지 아닌지 모호한 발언을 두고 한국 내에서는 적잖은 반발이 일었다. 통석은 사전에서 ‘몹시 애석하고 아깝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통석에 ‘염’이나 ‘금할 수 없다’와 같은 어떤 수식어를 갖다붙여도 통석은 통석일 뿐 사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나 태평양전쟁,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그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사죄를 한 경우가 거의 없다. 얼핏 사죄는 한 것 같아도, 그 이후 일본이 보인 행태를 보면 사죄를 사죄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1993년 고노 관방장관은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 즉 ‘고노 담화’를, 2년 뒤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무라야마 담화’를 내놓았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보면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고 그 피해자들에게 사죄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뿐이었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 한국과 일본이 현재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베 총리가 있다. 아베는 2015년 미국 하버드대 강연에서 일본군 위안부들은 인신매매의 피해자이며,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인신매매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유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죄는 하지 않았다.

일본이 진정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면, 기회 있을 때마다 사과하고 또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야 옳다. 그래야 피해자들이 사죄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본은 고노 담화를 유지한다, 언제 언제 사과를 했다 하는 말만 되풀이한다. 더구나 14명의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이 공식적으로 참배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에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 등을 단순히 나열만 하며 만행을 은폐한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가감 없이 교과서에 싣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수학여행을 가며 학생들에게 할아버지 세대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독일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지난 8일 자유한국당 의원 3명이 공동 주최한 국회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 나온 말을 두고 비판이 거세다. 공청회에 초청된 누구는 “전두환은 영웅”이라고 했고, 공청회를 주최한 한 의원은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들의 발언을 더 거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발언에 대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해명이다. 그는 9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자초했다. 10일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일부 의원들의 발언이 5·18 희생자들에게 아픔을 줬다면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공청회의 그런 발언에 희생자들이 통한의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면’이라는 가정법을 쓰고, ‘죄송’하다도 아닌 ‘유감’이라고 했다. 일왕이 한국의 대통령에게 말한 ‘통석의 염’에도 한참이나 못 미치는, 진정성을 찾기 어려운 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서영훈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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