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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파리장서(巴里長書)’와 면우 곽종석 선생- 김수용(산청군 행정교육과 서무민방위담당)

기사입력 : 2019-02-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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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이를 계기로 전국의 유림들 역시 조국의 독립을 위한 물결에 동참했다.

영남 유림 대표 곽종석과 호남 유림의 대표 김복한 등 137명은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청원서를 작성, 서명해 파리 강화회의(講和會議)에 보냈다.

이 한국독립청원서가 바로 2674자에 이르는 한문체로 만들어진 ‘파리장서(巴里長書)’로서, 장석영과 김황의 초고를 참조해 곽종석 선생이 원고를 완성한 것이다.

장서의 핵심적 내용은 여러 나라 여러 겨레는 제각기 전통과 습속이 있어 남에게 복종이나 동화를 강요받을 수 없으며, 사람이나 나라는 그 자체의 운용능력이 있게 마련이므로 남이 대신 관리하거나 통치할 필요가 없어 일본의 간섭은 배제돼야 한다고 했다. 또 일본의 포악무도한 통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우리는 거족적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만국평화회의가 죽음으로 투쟁하는 우리 2000만의 처지를 통찰해줄 것으로 믿고 있음을 주장했다.

일본의 감시를 피해 상해 임시정부까지 전달하기 위해 곽종석 선생은 김창숙에게 완성된 독립청원서를 외우게 하고 곽윤을 불러 깨끗이 옮겨 적도록 한 후 이것으로 신총을 만들어 미투리를 삼아 주었다.

올해는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매년 맞이하는 3·1 독립만세운동 기념일이지만 100주년을 맞은 2019년은 그 의미가 더 크고 새롭다.

평소 3·1 독립만세운동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파리장서(巴里長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해야 할 때가 됐다.

‘파리장서’의 최종 전문을 완성한 면우 곽종석 선생은 1846년 산청군 단성에서 태어났으며 주리론의 전통을 이은 한주 이진상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퇴계학을 계승한 영남 유림의 영수다.

곽종석 선생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영남 유림을 이끌고 전국의 유림과 연합해 ‘파리장서운동’의 선두에 섰는데, 이 일로 곽종석 선생은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병보석으로 출감해 그해 8월 눈을 감으니 그의 나이 74세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산청군은 3·1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곽종석 선생의 고향인 단성면의 유림독립운동기념관에서 ‘파리장서운동’을 재조명하고 유림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기념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웅장한 취타대 공연과 함께 ‘파리장서’ 전문을 명창 이효녕의 판소리 독창으로 감상할 수 있다.

유림독립운동기념관은 2013년에 건립, 한국 유림의 독립운동정신을 기리기 위해 곽종석 선생의 탄생지에 세워져 그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으로 맞서 싸웠던 선조들의 정신을 가슴 깊이 아로새겨,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하는 기념식이 되기를 희망한다.

김수용 (산청군 행정교육과 서무민방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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