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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일기- 손영희(시인)

기사입력 : 2019-02-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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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정자리에 큰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다. 그 나무 아래 나무 크기에 비례한 정자가 놓여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동네 어른들이 나와 계신다. 화투도 치고 전도 부치고 아예 점심 저녁까지 해결하고 들어가시니 매번 밖에 나왔다 들어갈 때는 그분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집에 들어올 때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같은 것을 사다 드려야만 마음이 편하다. 마을에 조그마한 가게 하나 없다 보니 작은 것에도 무척 반색을 하신다.

좀 더 젊은 노인들은 하우스에 일하러 가고 거동이 불편해 일을 못하는 분들이 정자의 주 고객이다. 전을 부치시며 “청주디야, 여 와서 이 좀 묵고가래이~” 하고 나를 부르신다. 내 택호가 ‘청주디’다. 택호를 받기 전까진 각시라 불렸다. 어르신들은 내가 젊게 보이는 모양이다. 나는 발치에 걸터앉아 그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동냥한다.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 놓으시거나 동네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듣다 보면 시의 소재를 얻을 때가 있어 기꺼이 빵이나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들어오는 때가 많다.

귀가 먼 할머니 두 분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한 할머니가 남편이 돌아가시게 생겨서 ‘아이고 우리 영감이 아무래도 힘들것다’하고 다른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더니 그 할머니는 ‘그려. 비가 오거나 말거나지’라고 동문서답을 하셔서 두 분이 오랫동안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내셨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요즘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정부에서 주는 노령연금에 대한 불만도 많다. 물론 노인을 위한 복지 차원에서 주는 공짜 돈이니까 감지덕지하려니 하겠지만 그게 그렇지만도 않다. 자신들에게 주는 노령연금이 결국 자식들의 세금에서 나온다는 걸 걱정하는 것이다. 평생 도움 없이 자식들 키우고 몸뚱이 하나로 재산을 일궈온 그분들에겐 공짜 돈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고 하신다. 정작 받아야 할 사람에겐 가지 않고 안 받아도 먹고살 만한 분들도 꼬박꼬박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는데 나라에 그렇게 돈이 많으냐는 것이다. 어떤 분은 건물 임대료가 월 천만원이 들어오는데도 명의를 다른 사람 앞으로 돌려놓고 그 연금을 받으신다고, 그런 편법이 어제오늘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무조건 많이 준다고 좋아만 하지 않는 어르신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녀들이 있지만 연락을 끊어서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기초연금조차 신청할 줄 몰라서 연금을 받지 못하는 분들에게 골고루 주어야 하는데 사무실에 앉아 서류만 보고 일을 한다고 걱정을 하신다.

국가에서 노인들에게 주는 혜택은 의외로 많다. 마을회관에 쌀과 반찬, 전기료, 난방비는 물론 회관 청소비까지 따로 나온다.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목욕차가 오기도 하고 독거노인들에게 수시로 전화연락을 해서 잘 계시는지 확인해보기도 한다. 노인복지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 부모님을 혼자 두고 나가 사는 자식들의 걱정을 국가에서 반은 덜어주는 셈이다. 하지만 무조건 주고 본다는 식의 선심성 행정이 돼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르신들은 무조건 주는 걸 바라지 않는다. 차라리 일거리를 주는 것이 그분들을 위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시골에 살다 보니 노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나도 머지않아 저 대열에 끼일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혼자 외롭게 있는 것을 제일 힘들어하신다. 그래서 눈만 뜨면 마을회관에 모이고 정자에 모여 서로 온기를 나누고 같이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는 일터를 찾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든 지금도 어둑한 방 한구석에서 홀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분들이 없는지 서로 관심을 갖고 찾아볼 일이다.

손 영 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