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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휘청대는 청춘- 조광일(전 마산합포구청장 )

기사입력 : 2019-02-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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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저녁, 포장마차가 줄지어 선 C대학교 근처를 거닐다 몸이나 녹일까 하고 장막 안으로 들어섰다. 비좁은 가게 안에선 홍합과 어묵이 흐느적거리며 끓고 있고, 올해 졸업생으로 보이는 청년 서너 명이 무표정한 주인장 앞에서 꺼무럭대고 있었다. 장기불황과 내수경기 침체 등으로 취업대란에 직면했다는 소리를 듣곤 앞길이 암담해서였을까. 술잔을 부딪치며 절망과 고통의 쓴맛을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대기업과 지방 유망기업들이 신규 채용 감소를 발표하면서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설상가상으로 공공기관 고용세습 등 특혜 채용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왜 아니겠는가.

요즘 신문을 펼쳐보기가 두렵다. “신념과 희망에 넘쳐야 할 청년들의 어깨에 실업률 10%의 돌덩이가 얹어졌다.”, “청년들에게 ‘미래’란 두 글자가 지워진 지 오래다”라고 하니 취업을 꿈꾸며 책상을 지키고 있던 청년들의 부푼 희망이 조각조각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다.

포장마차 한구석에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잔뜩 움츠리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 넌지시 다가가 말을 건넸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설정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대학 생활이 즐겁지 않으냐고 했더니, 아저씨가 뭘 모른다는 듯 찬바람이 쌩 도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분통과 체념 섞인 반응을 쏟아냈다.

“더 이상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공간이 아니라, 직장을 얻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뒤미처 한 학생의 말이 인상 깊었다. “우리 청년들의 가장 큰 불만은 ‘불평등한 기회와 불공정’입니다. 그의 가슴에는 비분한 마음이 꽉 들어차 있었다. 또 한 학생은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부모님 뵐 면목도 없고….”

그들의 말 속에서 이 시대 청춘들의 지친 표정이 그려졌다. 우리는 이들에게 ‘이 길이 더 빠르다’라고만 알려줬지, 길을 찾는 능력을 길러주지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물려주지도 못한 것 같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가슴속에 간신히 밀쳐놓고 있는 설움을 왈칵 치밀어 올려버릴 것만 같아서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입발림 같은 위로는 건넬 수가 없었다. 제발 열정만큼은 식지 않아야 할 텐데 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볼 뿐이었다.

좋은 일자리를 위한 경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꿈꾸고 도전해야 하기에 더욱 고단한 세대이다. 무력감에 싸인 청년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작가의 말처럼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되고 싶어서 하는 일,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 주는 일, 그리고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이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조 광 일

전 마산합포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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