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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넋두리- 허만복(경남교육삼락회장)

기사입력 : 2019-02-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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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한 번씩 팔순을 바라보는 할배들이 허름한 식당에 모여 소주 네댓 병에 오리불고기 몇 접시 놓고 세월을 곱씹어보는 60년 지기 죽마고우들의 동창모임이 있다. 이팔청춘 사춘기 까까머리 시절, 스승 ‘師’자 교표가 새긴 교모를 쓰고 만나서 어언 망팔(望八)을 지났으니 정말 오래 사귄 친구들이다.

20여명의 친구들이지만 젊었을 때는 대부분 기관장을 지낸 친구들인데, 이젠 늙어 놀이도 ‘점 천’이 ‘점 백’으로 변할 정도로 모든 것이 작고 좁아졌다. 해가 갈수록 노인들의 넋두리가 많아지고, 어린애들처럼 삐치기도 잘하는 친구도 늘어가는 것 같다. 그와 반대로 나이 들수록 덕을 쌓고 수양이 되어, 말이나 행동이 점잖아지는 친구들도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친구들을 사귄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오래전부터 사귄 친구처럼 편안하고 친근감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사귀어왔지만 건성으로 지내고, 한 번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친구들도 많다. 진정한 친구는 내가 정말 힘들 때 바위처럼 굳건히 서서 말없이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친구와 사귐을 석교(石交)라 했다. 좋은 친구는 상대방의 인생을 즐겁고 기름지게 한다고 했다.

20명의 60년 지기 중 법령(法令)이라는 ‘스님’ 같은 사람이 있다. 언행이 스님과 비슷하고, 불교와 부처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박식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다고 사범학교를 졸업을 했지만, 일반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행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세 분 도지사의 비서 생활을 했으며, 문화재 담당 공무원으로 정년한 죽마고우다.

법령은 한문에도 조예가 깊어 수백년 된 조선시대 고승들의 비문을 찾아 해석하여 친구나 후배들에게 조상들의 문화와 위업을 알려주고 있으며, 국보인 고려팔만대장경 조성사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수필로 읽기 쉽게 엮어, 학생이나 일반인에게 문화재에 대한 바른 역사를 알려 주고 있다. 특히 TV 역사드라마의 고증을 해줄 정도로 학식을 갖고 있지만, 자만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매일 이메일로 정보를 보내주면서 문화재에 대한 지식을 넓혀 주고 있다.

‘백년을 살아도’의 저자 김형석 교수가 말했듯이, 집사람을 보냈을 때에는 온 집안이 텅 빈 것 같이 느꼈지만, 절친한 친구를 잃었을 때는 세상을 잃은 것 같았다고 했다. 나이 들수록 아내와 친구의 소중함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친구 중에는 돌같이 변하지 않는 ‘석우’도 있고, 삶을 즐기는 술친구 등 다양한 친구도 필요하다. 노인들의 공통점은 나이 들수록 넋두리가 많아지고, 아집이 늘어 감정의 굴곡이 심하고, 사고의 폭이 좁아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늦고 무거운 짐이 되기 전에, 법령과 같이 남을 위한 배려와 수십 년을 쌓아온 넋두리 속에 담긴 보석 같은 인생사와 사리 같은 진리를 친구들이나 후배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멋진 늙은이가 되도록 노력을 하자는 제안을 해 본다.

허만복 (경남교육삼락회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