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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개천용 지수-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기사입력 : 2019-03-14 07:00:00


경남 출신 전직 정치인 일화다. 중학교 진학이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다. 시험을 치러 진학하던 시절이었다. 전교 1등에겐 학비를 전액 면제하는 혜택을 받기 위해 명문 학교 대신 한 단계 낮춰 지원했다. 기대와는 달리 2등으로 합격하는 바람에 학비 일부를 내야 했다. 모친이 학교를 찾아가 눈물로 통사정했다고 한다. 이후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사로 이름을 날렸고 20년 가까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경우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공한 삶을 개척한 미담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신화가 됐다. 예전엔 내세울 것 없고 가난하지만 땀과 눈물을 쏟은 만큼 지위와 부를 쌓을 기회의 사다리가 있었다. 현대는 각박하다. 부와 지위의 대물림이 고착화하면서 ‘개천 용’은 멸종위기다. 부모가 흙수저이면 자식도 그 멍에를 짊어지는 ‘가난세습 공화국’이다. 오죽하면 ‘통장에서 용 난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간간이 가난을 노력으로 극복한 성공담도 들리지만 기회는 과거보다 줄었다.

▼‘개천용 지수’란 게 등장했다. 서울대학교 분배정의연구센터 주병기 교수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정도를 수치화했다. ‘기회가 평등할 때 성공할 사람 10명 중 기회 불평등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다. 즉 불평등 지수다. 부모 학력과 소득분포, 자녀 소득 등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이 지수는 2000년대 초반 15~20%에서 2013년 35%로 높아졌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공부를 잘해서 경제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졌다는 의미다.

▼가족과 대인관계의 크고 작은 다툼엔 대부분 돈 문제가 연결돼 있다. 가난은 기회 박탈과 이에 따른 자괴감을 수반한다. 교육이 가장 손쉬운 계층이동의 수단이었는데 돈 없인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2017년 기준 만 65세 이상 노인 약 6만6000명이 폐지를 줍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 100명 중 1명꼴이다. 가난의 대물림은 가슴 아픈 일이다. 가진 것 없는 부모는 자식 볼 낯 없는 세태다.

이상권 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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