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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차라리 매화그늘에서 시라도 읽자- 김남호(시인·문학평론가)

기사입력 : 2019-03-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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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왠지 시나 소설을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낄 때가 있다. 소설이라도 ‘읽어줘야’ 밥벌이에 쫓기며 사는 자신이 좀 깊이를 가진 사람이 될 것 같고, 시라도 ‘읽어줘야’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라도 근사하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잠시일 뿐 먹고사는 일에 쫓기다 보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던가 싶게 잊고 살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자문한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뭣 하러 읽지?’

우리나라 사람만 그런 건 아니었던지 오래전 미국의 평론가이자 작가였던 로버트 펜 워런은 그의 저서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에서 이렇게 근사한 답을 준비해 놓았다.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만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의 말에서 ‘소설’ 대신 ‘시’를 대입해도 역시 근사하다. 꽤 매력적인 이 구절에 의하면,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시나 소설이 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우리가 문학작품에서 원하는 것들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재미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따분함을 견디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재미있는 무언가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현대인들에게 권태는 전쟁보다 무섭다. 둘째는 지식의 습득이다. 뭔가 배운다는 느낌이 들 때 사람들은 좋아한다. 어떤 형식으로든 그 안에 새로운 정보나 가치 있는 지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의미를 두지 않는다. 셋째는 감동이다. 현대인들은 감동에 목마르다. 시나 소설이 나를 슬프게 해주기를, 혹은 기쁘거나 아프게 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 시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거나 그렇게 되는 것 같은 착각 아닐까. 어느 평론가는 이 말을, 사랑을 슬쩍 곁들여서 이렇게 우아하게 표현했다.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그런 기분이 된다.”(신형철) 스스로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고 싶다면 좋은 시를 읽으라는 거다. 역으로 좋은 시를 읽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매화 폭발하는 이 봄날에 뜬금없이 ‘더 나은 인간’ 운운하는 심정은 착잡하다. 더 나아진다는 착각은 고사하고 지난날의 악몽에 진저리치는 날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유독 꽃피는 봄날에 더욱 처절해서, 꽃향기가 아니라 최루가스 냄새로 봄날을 보내야 했던 그 악몽 말이다. 며칠 전 어느 회식 자리에서 주흥이 도도해진 한 정객 출신이 건배를 외쳤다.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물론 건배 구호는 ‘인향-만리’였다. 꽃보다는 술이, 술보다는 사람이 더 향기롭단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지 못해 안달하는 그 정객에게서 ‘인향만리’가 아니라 차라리 ‘분향만리(糞香萬里)’, 지난 권력의 지독한 구린내를 느꼈다.

요사이 눈앞이 부연 것은 비단 미세먼지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제발 나아가지는 못할지라도 뒷걸음은 치지 말자. 이 봄날 그리도 할일이 없으면 매화그늘에서 시라도 읽자.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조차도 모른다면 말이다.

김남호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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