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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생명의 문턱, 음력 2월- 이주언(시인)

기사입력 : 2019-03-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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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소식으로 들뜨는 때다. 그런데 우리 집안에는 이 시기에 제사가 가장 많다. 시댁의 할아버지·할머니,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나의 외할머니 제사가 모두 음력 2월에 있다. 우리 부부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도합 열두 분 중에 적어도 다섯 분의 제사가 음력 2월에 있다. 세 분의 외조부모 제삿날은 알지 못하고 나의 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시니 8분의 5라는, 절반이 넘는 확률로 집안 어르신들이 음력 2월에 돌아가신 셈이다. 그만큼 봄의 문턱을 넘어서기가 힘들었다는 의미다.

들판에서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 밀어 올리기가 진행되고 있을까.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는 엘리엇의 시가 생각난다. 뿌리에 새겨진 유전자의 힘으로 종족보존의 의무를 다하는 식물 이미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추억과 욕정을 뒤섞’는 동물적 이미지도 곁들였다. 시시포스의 작업처럼 무한반복의 생(生)을 유지시키기란 이처럼 지난한 일이다.

우리의 음력 2월도 이런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반복의 리듬을 타며 우리도 힘든 시기를 맞는 것이리라. 젊어서는 봄이라는 계절에 마냥 들뜨고 가슴 벅찬 에너지를 느낄 수 있지만 노인이 되면 그 에너지의 힘을 견뎌내기 힘든 모양이다. 팔순이 훌쩍 넘으신 나의 아버지도 힘들게 음력 2월을 살아 내고 계신다. 죽음의 문턱 앞에 있는 아버지를 보면 ‘야윈 이 얼굴을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매한 나는 다른 일들이 우선이어서 잠시 얼굴을 뵙고는 병실을 빠져나온다. 마음속으론 늘 “주님, 죽음으로 드는 저의 아버지가 큰 두려움과 난관 없이 그 길을 통과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라는 기도가 맴을 돈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 혹은 소멸로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이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본다. 죽음을 느끼는 고통의 시간이 짧기를 얼마나 바랄 것인가. 그런 면에서는 중환자실을 거치며, 또 한 번 고비를 넘겨 죽음의 과정을 연장시켜 놓은 일이 아버지께 죄송스럽기도 하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마음 편한 쪽을 택하는 셈이다.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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