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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48) 제24화 마법의 돌 48

“술만 마시지 말고 밥도 먹어요”

기사입력 : 2019-03-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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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나오자마자 대히트를 쳤다. 망국의 노래라 조선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황성 옛터에 밤은 깊어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설은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이재영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자 류순영이 낮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유성기를 사 준 뒤에 류순영이 창가를 좋아하여 하루 종일 흥얼대고는 했다.

이내 춘당지 앞에 나란히 앉았다. 춘당지는 1909년에 연못을 파고 수정(壽亭)까지 지었다. 수정은 4층 정자다. 춘당지는 조선시대 때 과거시험을 보았던 곳이기도 하다. 연못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물결이 찰랑거린다.

“여기는 경치가 너무 좋아요. 이런데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요.”

류순영이 김밥을 먹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의 남편이지 않소? 이제 1년에 한 번이라도 여행을 시켜주겠소.”

“내가 당신한테 시집온 거 잘한 거 같아요.”

류순영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재영을 향해 꽃 같은 미소를 자주 날렸다.

“나도 당신을 아내로 맞아 행운인 거 같소.”

이재영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내일은 동대문 시장과 남대문 시장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이재영이 경성에 올라온 것은 화신백화점을 구경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사업에 대한 것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이미 부산과 성진, 군산까지 다녀왔다. 군산은 일본으로 미곡 수출이 활발했고 성진과 부산은 무역이 활발했다. 연해주의 최고 부자로 불리는 최봉준은 원산과 성진에 대규모의 상관을 짓고 하루 5만원의 하다고 신문 광고까지 낸 일이 있었다. 최봉준은 10여 년 전에 죽었으나 그의 자식들이 상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본은 중일전쟁을 벌이기 위해 중국의 동북지방, 만주 일대를 점령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장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류순영은 김밥과 사이다를 먹고 이재영은 월계관이라는 술을 마셨다. 월계관은 일본에서 생산되는 청주인데 조선인들도 많이 마셨다.

“술만 마시지 말고 밥도 먹어요.”

류순영이 김밥 하나를 집어서 이재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창경원은 곳곳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벚나무와 대궐에 비추어 더욱 쓸쓸해 보였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요?”

“대궐을 보니까 비창(悲愴)한 생각이 드네.”

“비창이 뭔데요?”

“마음이 몹시 아프고 슬프다는 뜻이오.”

“어머, 어떻게 해?”

“당신 탓이 아니오. 우리 임금이 살던 대궐을 보고 회포를 느끼는 것이 나뿐이겠소?”

“당신이 그러면 나도 마음이 아프고 슬퍼요.”

류순영이 이재영의 손을 잡았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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