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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블루스 시즌4-어제, 오늘 그리고 청춘] 진주검무 이수자 성지혜 씨

검(劍) 꺾이지 않는 칼처럼 무(舞) 흔들림 없이 춤추다

기사입력 : 2019-03-26 22:00:00


“…진주성 성안 여인 꽃 같은 그 얼굴에

군복으로 단장하니 영락없는 남자 모습

보랏빛 쾌자에다 청전모 눌러쓰고

좌중 향해 절한 뒤에 발꿈치를 들고서

박자 소리 맞추어 사뿐사뿐 종종걸음

쓸쓸히 물러가다 반가운 듯 돌아오네

하늘을 나는 선녀처럼 살짝 내려앉으니

발밑에 번쩍번쩍 가을 연꽃 피어난다…(중략)”

-다산 정약용, ‘무검편증미인’ 가운데

240년 전 진주에서 진주검무를 본 정약용이 쓴 시 그대로다. 머리에 장수의 전모를 쓰고, 칼을 빼내 든다. 카랑카랑, 칼장식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진주가 갖고 있는 무언가처럼 꺾이지 않는 칼목, 그것을 돌리기 위해 낭창낭창해진 손목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전인 1967년, 춤으로는 국내 처음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춤사위는 날렵한 가운데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이 진주검무에 반해 스무살 때 처음 배운 진주검무를 평생 이어가겠다 마음에 새겼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이수자 성지혜(38)씨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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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검무 이수자 성지혜(오른쪽)씨가 진주시 전통예술회관에서 진주검무를 시연하고 있다.


◆화장실에서 빌었던 소원을 이루다

“춤을 꼭 추게 해주세요.” 화장실 갈 때마다 소원 비는 시간을 가졌던 때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무용반에서 춤을 춰 본 것이 시작이었다. 한창 군것질을 하고 싶다거나 친구들이랑 놀 궁리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두근거림에 잠을 설쳤다. ‘얼른 다음 안무로 진도가 나갔으면 좋겠다!’, ‘내일 연습 많이 해야지!’ 부푼 꿈의 공기가 빠져나가듯 가정형편이 어려워졌고, 돈이 많이 드는 예체능계로의 진학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제가 선뜻 무용을 계속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못하는 걸 아시는지 중 2때 정말 하고 싶은 걸 편지로 써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솔직하게 춤이 너무 추고 싶다고 썼죠. 더 간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습니다.”

뜻이 전해져 한국무용 선생님을 만나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고3 때 진주의 대표 축제인 개천예술제 학생무용부문에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으며 지역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진주 검무가 들어앉다

진주검무를 춘 지 햇수로 올해 20년째가 된다. 진주 검무와의 만남은 경상대학교 민속무용학과에 진학하면서다. 풋풋한 신입생 때 진주검무 연수를 받았고, 첫 대회를 준비하게 됐다.

“진주검무는 입시 때 접해보지 못했던 춤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수상도 해 뿌듯했죠.”

그 대회 이후 대학 내내 공연을 나갔고 연습도 이어가다 졸업 즈음, 남들처럼 취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의정부시 무용단에 입단했다. 한국무용의 다른 줄기인 살풀이춤, 승무를 배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 속에 들어앉은 건 진주검무였다. 다른 춤을 배워도 매순간 끈을 놓지 않았던 춤. 진주 논개의 얼과 호국의 정신이 담긴 춤, 궁중무용의 원형을 그대로 갖고 있어 가장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춤이었다. 2005년 경상대로 돌아와 무용학과 조교 생활을 하며 평생교육원에서 고 성계옥 보유자의 가르침을 받게 됐다. 현재 그에게 진주검무를 가르치는 진주검무 보유자인 유영희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과의 인연도 그때부터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전수생의 길에 들어서며 2012년에 진주검무 이수자가 되었다. 일정한 시간을 들여 연습을 하고, 역량을 갖춘 이들에게 국가에서 전수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 진주검무를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는 생각을, 이수자가 되면서 하게 됐다.

메인이미지진주검무 이수자 성지혜 씨가 진주시 전통예술회관에서 진주검무를 연습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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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이다 보니, 춤사위를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 중요해요, 그대로 이수해 나가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핵심이니까요. 흥이 난다고 더 넘치거나, 더 느슨하게 표현해서도 안 되는 중도를 지키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그것이 검무를 하는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요.

◆진주검무 이수자의 길

일본 구마모토로 무용공연을 다녀온 경험으로, 이미 고등학생 때 우리나라를 아끼는 방법 중의 하나가 한국무용이라는 것을 느낀 그다. 부채춤과 동래학춤 등의 한국무용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한국무용,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를 이어가야겠다는 마음은 그때부터 자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마음이 이수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데 온 힘을 쏟게 만들고 있다. 국립무형유산원이 생기면서 이수자들을 위한 방향 모색이 좀 더 왕성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수자인 것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 그는 경제활동과 이수자 활동을 병행할 방법을 찾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소속 경남 중등 무용예술강사가 됐다.

“진주 학생들인데 진주검무를 거의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학생들에 진주검무를 가르쳐줬습니다. 칼을 사용하는 것이어선지 학생들이 유난히 좋아하고 흥미를 가졌어요. 진주여중 학생들은 진주검무로 동아리 축제에 나가기도 하고, 논개제 때 함께 공연에 서기도 했어요.”

진주검무를 추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때도 진주검무를 가르쳤던 순간들이다. 2014년 우즈베키스탄에 한국어도 모르는 고려인 3세를 대상으로 진주검무를 알려줬던 기억, 국립무형유산원 사회교육강사로 일반인들에 한두 시간 만에 진주검무를 가르쳤던 때가 오래 남아 있다고 했다.

“진주검무를 전문적으로 추는 저희 같은 사람은 춤을 출 때 전장의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과 논개의 얼을 담아내려 늘 노력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런 정신과 감정들이 낯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춤추기 전 먼저 우리의 현재 꿈을 쓰자고 했어요. 그 꿈과 염원을 이루는 마음을 담아서 추자고요. 꿈을 적고 나서 서툴지만 기원하는 마음으로 칼을 빼어드는 눈빛들을 봤을 때, 참으로 좋았습니다.”

◆나의 꿈과 당신의 꿈을 위해

이수자로 활동하는 그는 유영희 예능보유자의 추천으로 진주 검무의 원형에다 화려한 춤사위와 음악을 얹어 새로운 창작무도 개발했다. 원형을 숙련시키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게으르지 않으면서도 김태연 예능보유자의 보조강사로 전통예술원 학생들을 지도하며 현 시대에 맞는, 또 세대별로 청소년이나 노인들에 알맞은 진주검무 기반 창작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크다. 뿐만 아니라 몸으로 진주검무를 체득하고 표현하기를 갈망하는 지혜씨는 머리와 마음으로도 진주검무를 이해하고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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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검무가 한국과 진주의 정신이 잘 깃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 얼을 밝히고, 문화재 선생님들의 올곧은 정신을 받들어 진주검무의 의미는 어떤 것이 있을지 깊이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그처럼 예술을 이어가는 일, 문화재를 이어가는 일을 하려는 청춘들의 꿈도 다독인다.

“무용수로서의 길, 안무가로서의 길, 예술강사로서의 길도 있지만, 지금은 저기에도 갇히지 않는, 더 스스로를 내보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넓게 보고, 우리 무형유산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어제를 알고 지금의 나를 가꿔간다면 내일은 한걸음 더 가볍게 디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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