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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양산 자연농 활동가 채상병 씨

마음의 텃밭 넓히며 ‘온전한 내 삶’ 일궈요

기사입력 : 2019-03-28 22:00:00

20대 초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보면 자기 의지대로 산다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 프랑스의 한 시인이 ‘생각 없이 살다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 것처럼, 시류에 흘러 살며 열정 뜨거웠던 청년이 만사에 미적지근한 직장인이 되는 일은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양산 소주동에 열정을 잃은 직장인 대신 생각하는 대로 살고자 한 농부가 있다. 2008년부터 부산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채상병(40)씨는 지난 2017년 돌연 일을 그만두고 농사를 시작했다. 삶을 오롯이 충만하게 살고 싶어서 시작한 농사. 채씨는 지금 그 꿈에 한 발씩 다가가고 있다. 그 비결은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청년들을 교육하고 함께 일하며 사람 농사도 짓고 있기에 가능하다. 채씨에게 삶을 내 삶으로 사는 법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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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 활동가 채상병씨가 자신의 집 앞에서 키우는 산양에게 풀을 먹이고 있다./성승건 기자/

◆자연의 삶 이끌게한 ‘생태 감수성’

채씨의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관심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시절 녹색평론 독자모임에 참석해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함양군 백전면에 있는 녹색대학을 접했다. 함양 녹색대학은 국내 최초 대안 대학교로 지금은 함양 온배움터로 이름을 바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채씨는 함양 온배움터에서 생태적 세계관과 생태문화공간의 중요성을 배웠다. 채씨는 이 과정에서 자연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생태 감수성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온배움터를 부산에도 설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채씨는 학업을 마치고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며 자연과 공존해 살아가는 생태적 삶의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알리려 애썼다. 하지만 말에서 그친 교육은 진짜 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이 교사 생활에 제동을 걸었다. 채씨는 직접 해봐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 교사를 내려놓고 직접 생태적 삶을 살기로 했다. 지난 2017년 양산의 한 황무지를 임차받아 농지로 개간했다. 해당 농지는 ‘모모의 정원’이라고 이름 지었다.

채씨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어느 순간 체험으로 다가오는데 이를 생태적 감수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며 “내가 키운 밀이 황금 들판을 만들어 낸 아름다움과 그 성취감은 꼬박꼬박 수백만원의 월급이 통장에 꽂히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자급자족으로 살아가기

채씨는 집 앞의 밭과 논 6600㎡(2000평)를 경작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펀딩을 통해 인근 주민에 주말농장 형식으로 제공해주고 있다. 또 닭과 산양을 키우며 계란과 젖을 식자재로 이용하고 있다. 쌀과 채소 등 대부분의 먹거리는 직접 생산한다.

이런 자급자족의 삶이 본업을 접을 만큼의 힘을 갖고 있다는 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되묻자 채씨는 생태적 삶이 사회 근본 문제를 해결하며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사는 것과 연결돼 있다고 한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깊이 고민해보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생산의 문제에 있다. 예를 들어 소비의 영역에서 플라스틱을 적게 쓰고 분리배출한다고 해도 공장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을 막을 순 없다”며 “생산 차원에서 사용할 물건을 최대한 직접 생산하는 것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첫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많은 돈을 번다고 해도 지금 경제 구조적으로 노동의 소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누구나 일상의 억압에 굴복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생태적 삶은 자신이 어디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인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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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 활동가 채상병씨가 자신의 집 앞에서 키우는 산양에게 풀을 먹이고 있다./성승건 기자/

◆통장 잔고 ‘0’이 되자 심장이 조여왔다

신념에 따른 삶을 살기란 쉽지 않았다. 농사를 시작한 초기에는 수입은 없고 돈 들어갈 곳은 한두 곳이 아니었다. 결국 그의 통장 잔고는 바닥을 찍었고 그는 아내와 아이 둘이 있는 가장으로서 벼랑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원해서 바꾼 삶이었지만 매월 300여만원씩 고정 수입이 있다가 통장 잔고가 0이 되자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며 “돈이 한 푼도 없게 되자 대리운전, 일용직 근로자 등 당장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 일을 시작하면 제때에 밭을 일굴 수 없어 한 해 농사를 망친다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결국 난 삽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초창기에는 전적으로 농사로만 살아갈 순 없어 과외나 양산의 교육단체 등에 출강을 가는 등 부정기적인 소득에 의존했어야 했다. 여기에는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이어온 온배움터 활동과 생태 교육자로서의 경력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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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 함께라서 가능했다

채씨는 갖은 어려움 끝에 지금은 안정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 양산시 평산동에 있는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의 공동체와 부산 온배움터의 교육 공동체가 그 삶의 원동력이 됐다.

꽃피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가정들이 채씨의 모모의 정원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을 소비해 주는 펀딩에 참여했고, 온배움터는 채씨가 생태 교육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왔다.

채씨는 “자본주의는 인간 관계를 끊고 각자의 일에 집중하게 만드는데 꽃피는 학교와 온배움터는 반대로 관계를 확장해줬다”며 “혼자서는 이런 삶의 전환을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 생태 교육 확대할 것

채씨는 부산 온배움터에서 지난 2017년부터 청년대안활동가 양성과정 교육을 진행하며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거기에 공감한 청년들 중 4명이 지금 모모의 정원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또 청년 자급자립 생태예술축제 ‘온나’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소비하는 삶에서 벗어나 삶에 필요한 것들을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직접 만든 것들을 선보이기도 한다.

채씨는 “돈만 벌고 살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삶을 통해 비로소 사람이 보인다”며 “자급자족 삶을 이어가며 청년대안활동가 교육이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커리큘럼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청년들의 고민들이 실천으로 이어져 세상이 조금씩 바뀔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규홍 기자 h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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