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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문화기획] 주민 참여형 문화프로그램

막이 오른다! 우리가 만드는 동네축제 흥이 오른다!

기사입력 : 2019-04-03 07:00:00


“왜 지역축제는 매번 똑같죠? 아이템만 바꿀 것이 아니라 테마,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지난 2017년 창원 문화인력 양성사업 ‘창문(昌文)’ 2기 수업 때 나온 이야기다. 천편일률적인 문화행사에서 벗어나 표현력을 전제로 사회를 바꾸려는 목적의식이 생겨났다. 그 결과 최근 지역 고유의 개성이 담긴 콘텐츠를 개발하는 문화네트워크가 곳곳서 만들어지고 있다. 지자체가 앞장서 잘 계획된 사업을 소개하는 기존의 공청회 같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시민 누구나 직접 사업을 제안하고, 제안된 사업이 시민의 공감과 연대를 통해 추진되는 ‘참여형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의 소규모 문화 활동 모임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전문 예술인들이 특정지역을 찾아와 단기간에 작품을 만들어놓고 사라지는 게릴라식 공공예술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지역의 목소리를 높이자는 주민들의 요구가 더해진 결과다. 문화기획자 가운데 일부는 동네에 터를 잡고 주민과 어울리면서 교감하고 스며들어 마을 재생을 꿈꾸기도 한다. 경남에서도 문화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의 성과로 지역주민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의 가치를 짚어보고, 우수 사례들을 소개한다.

◆왜 많아졌나= 주민 참여형 문화프로그램이 쏟아지는 데에는 ‘지역문화진흥법’의 영향이 크다. 주민 고령화와 도시 쇠퇴 등을 해결할 방안으로 지난 2014년 1월 제정됐다. 제1조를 보면 ‘이 법은 지역문화 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지역 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별로 특색 있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역문화 부흥을 위해 문화기획자 양성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정부와 광역시·도의 문화재단, 지자체 등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지역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정 축제나 행사, 공연 등 일회성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지역 고유의 개성을 담은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설치미술, 벽화, 축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의 매너리즘에 균열을 내고 도시재생에 앞장서는 ‘아티스탕스(아티스트+레지스탕스)’의 출현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지역 우수 사례= 버려진 옥상이 주민 문화공간으로 변한 ‘동대문옥상낙원’이 대표적인 예다. 프로젝트 그룹 ‘동대문청년’이 만든 이곳은 주민의 발길이 끊기고 방치된 서울 동대문 신발 도매상가의 옥상 공간을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했다. 수십년간 옥상에 쌓여 있던 폐기물 18t을 처리하고 다양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성해 협업공간으로서 옥상을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전문 예술가들은 물론 일반 주민들이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공유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은 기존 하드웨어 중심의 공공디자인 개념을 넘어서 공공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참여와 소통의 요소들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201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 선정됐다.

전라북도 남원시에는 2017년부터 ‘남원 사운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이어오고 있다. 인구 8만4000여명의 작은 소도시이지만 세계적인 오디오 아티스트들이 모여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남원의 소리를 찾아낸다. 남원지역 고유의 브랜드를 ‘소리’로 정하고 오디오 아티스트와 지역 어르신, 청년 기획자들이 전시하고 소통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경남은= 도내에서도 지역주민들과 융합한 예술 프로그램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지자체에서 처음으로 문화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창원시 ‘창문’ 수강생들의 성과다. 지역에서 휴먼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중점 추진하면서 전문가 자문회의와 현장 활동가 라운드회의를 계속 열고 있다. 또 시민대화 모임으로 창원살롱G, ‘100인이 함께 그리는 진해’ 원탁토론 등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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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거리페스티벌 ‘문화로시끌벅적’.

△창원거리페스티벌 ‘문화로시끌벅적’= 지난해 11월 창원에서는 자동차들이 달리던 도로에 가족들이 책으로 집을 짓고, 도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예술가와 농부, 인디밴드,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예술축제가 열렸다. 거리페스티벌은 공무원이 기획하고, 이벤트 대행사에 의뢰해 예산을 집행해 시민이 구경하는 기존 축제의 방식과는 달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들이 주축이 됐다.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이 지역문화로 채워졌다는 점과 지역주민과 문화기획자들이 연대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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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컬처랩 ‘푸드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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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컬처랩 ‘푸드사계’.

△창원컬처랩 ‘푸드사계’= 창원컬처랩 (한영신·백수정·손고빈·김초아)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들이 지역 문화를 기획·연구하는 소모임으로, 지난해부터 지역 요리사와 생산자가 협업해 지역 음식 재료와 계절별 식문화를 다루는 ‘푸드사계’를 첫 결과물로 내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디저트 카페를 열어 토마토 마시멜로, 단호박 타르트, 블루베리 케이크, 토마토 젤라토 등의 메뉴를 테이블에 올렸다. 창원 동읍에서 난 토마토와 단호박, 북면에서 따온 블루베리 등을 주요 재료로 삼았고, 지역 식당과 베이커리들도 동참했다. 농부와 상인, 기획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지역밀착형’ 프로그램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시금치 브런치를 맛보는 등 계절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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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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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살롱.

△경화살롱= 군항제(4월 1~10일) 기간 동안 인근 마을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벚꽃을 즐기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지난 2월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8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경화역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는 대화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을 통해 시민이 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지역 문화기획자와 함께 발굴하고 실행을 서로 돕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주민과 기획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기존 축제 준비 단체와 마찰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관계를 형성해 일관된 계획을 추진하는 게 중요한데, 민간 주체의 역량에 대한 지역민의 불안과 우려를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과 기획자, 공무원 등이 자주 만나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선베드에 누워 차를 마실 수 있는 ‘철길다방’과 벚꽃음악제 등을 여는 ‘어쿠스틱 월드’, 대형 아트매트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벚꽃 피크닉’ 모두 지역 주민들이 제안한 프로그램이다. 경화동 주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투어 ‘경화탐험대’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띈다. 경화역 중앙무대에서 헤드폰을 끼고 춤추는 ‘사일런트 클럽’은 경남 최초로, 진해지역 춤꾼들이 등장해 무대를 즐겁게 한다. 철길다방을 운영하는 이수경씨는 “음료를 만드는 일을 경험해본 적 없지만 우리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인 만큼 참여하고 싶었다”며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말했다. 또 경화탐방길을 기획한 김다순씨는 “우리 동네 이야기를 방문객에게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어 직접 경화동 맵을 디자인했다”며 “경화살롱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발전하려면= 주민과 기획자, 예술가, 지자체의 ‘문화 협치’를 이어가려면 지역단체들이 관습적으로 받던 예산이나 지원 등 이해관계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렵겠지만 직접 부딪히고 필요에 의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주민들에게 참여형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라고 제안하면 우왕좌왕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지자체가 공모하는 사업에 선정돼 주어진 예산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지역문화 콘텐츠를 제작하다 위기에 봉착하면 수용자에게 정신적, 사회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도록 실패 요인을 해결하고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것이 해답이 된다.

문화 협치 활동을 펴고 있는 성북문화재단의 경우 마을 자치 활동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순기능이 발현됐다. 무관심하거나 뒷전에 있던 주민들을 끌어낸 셈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김경화 창원시 문화예술과 정책관은 “일회성 위탁사업으로는 민간 주체의 역량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며 “민간이 장기적 혁신 실험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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