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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58) 제24화 마법의 돌 58

“도쿄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

기사입력 : 2019-04-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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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몹시 피로해 보였다. 류순영은 때때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밥을 사서 나누어주기도 하고 사이다를 사서 삶은 계란과 함께 나누어주기도 했다. 승객들은 대부분 일본인들인데 조선 여자가 있어서 류순영이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여자는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도쿄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

류순영은 기차가 도쿄를 떠난 지 여러 시간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남편이 아프다는 전보를 받고 왔어요.”

여자가 슬픔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이는 서른 살을 갓 넘어 보였다.

“아 병간호를 하러 왔군요. 남편 분은 회복되었나요?”

“아니요.”

이재영은 잠이 든 체하며 눈을 감고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 아직도 병원에 있어요?”

“아니요. 제가 가지고 왔어요.”

“예?”

류순영이 어리둥절했다. 이재영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실눈을 떴다. 여자들의 이야기에 끼어들 수 없었다. 기차는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죽었어요. 그래서 화장을 해서… 타국에 묻을 수는 없잖아요?”

여자가 낮게 말했다. 이재영은 비로소 그녀가 유골상자를 가지고 기차를 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류순영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재영은 그녀가 가지고 온 상자가 유골상자라는 것을 알자 기분이 미묘했다.

“남자 분은 뭘하는 분인데 도쿄에서 돌아가셨어요?”

“이상이라고 아세요?”

“이상이요?”

“소설가 이상이요. 날개 같은 소설을 썼어요. 시도 썼고요.”

“아, 알아요. 날개 읽었어요. 그럼 이상 선생님이 돌아가신 거예요? 어머! 이를 어째?”

류순영이 소리를 질렀다. 이재영은 소설을 잘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이 누구인지 몰랐다.

“병을 고치러 도쿄에 왔는데 고치지 못했어요.”

“그럼 그쪽이 금홍이에요?”

“아니에요. 금홍은 소설 날개에 나오는 여자고… 전 변동림이에요.”

“아.”

류순영이 탄성을 내뱉었다. 류순영은 변동림을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좋은 소설을 쓰신 분인데… 젊잖아요? 벌써 돌아가시다니….”

“이제 서른여덟 살이에요. 몇 년 전부터 폐결핵을 앓아 도쿄에 갔는데… 고치지 못했어요.”

폐결핵은 좀처럼 치료가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변동림은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류순영이 친절하게 이야기를 하자 그녀도 슬픔에 잠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이 사람을 만난 것은 이화여전을 다닐 때예요. 신기한 일이죠? 우리는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어요.”

글:이수광 그림:김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