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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59) 제24화 마법의 돌 59

“유골은 고향으로 가져가요?”

기사입력 : 2019-04-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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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전에 다닐 때라면 스무 살이 되지 않았을 때일 것이다. 그녀는 이상을 만나자마자 깊은 사랑에 빠져서 동거했다고 했다.

“도쿄에 있는 친구들이 전보를 보냈어요. 경성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열두 시간이 걸렸어요. 부산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까지 열두 시간… 시모노세키에서 도쿄까지 또 열두 시간… 모두 서른여섯 시간을 걸려 병원에 도착했어요. 해경씨가 멜론을 먹고 싶다고 그러대요. 그래서 사다가 주었더니 한 조각을 먹고 죽었어요.”

변동림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멜론 한 조각을 먹고 죽다니. 이재영은 소설가 이상의 죽음이 허망했다.

“해경씨요?”

“그이의 본명이 김해경이에요.”

“그렇군요.”

변동림은 서른여섯 시간이 걸려 도쿄에 와서 남편 이상의 임종을 맞이했다. 그는 변동림이 도착한지 며칠 되지 않아 운명했다. 변동림은 도쿄에 있는 이상 친구들의 도움으로 화장을 한 뒤에 유골상자를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는 길이 서른여섯 시간이 걸렸으니 돌아가는 길도 서른여섯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재영은 변동림의 여행이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유골은 고향으로 가져가요?”

“아니요. 고향을 잘 몰라서 망우리에 묻을 거예요. 시댁과 왕래도 없었고….”

“망우리요?”

“공동묘지예요. 망우리에 친구인 김유정도 묻혀 있으니까.”

김유정은 <동백꽃>을 쓴 소설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도 페결핵으로 요절했다. 류순영과 변동림은 친구 삼아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시모노세키에서 하룻밤 자고 갑시다.”

변동림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이재영이 말했다.

“원래는 부산에서 일박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류순영이 눈을 크게 떴다.

“기차를 열두 시간 정도 탔더니 피곤하오.”

“알았어요.”

류순영이 선뜻 대답했다. 시모노세키에는 오후 4시에 도착했다. 이재영은 시모노세키에서 변동림과 헤어졌다. 변동림은 조선으로 돌아가는 관부연락선을 타러 가고 이재영은 부두에서 가까운 여관에 방을 잡았다. 유골상자를 안고 가는 변동림을 보면서 이재영은 쓸쓸했다. 해질 무렵이라 시내 구경을 하러 나갔다. 시모노세키는 항구라 서양식 건물이 많았다.

“콘크리트 건물이 아주 탄탄해 보여요.”

류순영이 번화가를 걸으면서 이재영에게 말했다. 류순영은 화사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도쿄의 번화가 긴자에서 산 것인데 구두까지 신자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얼굴도 미인형이고 피부도 고왔다.

이재영은 류순영과 나란히 걷자 기분이 좋았다.

“콘크리트는 100년 동안 굳어져 간다더군.”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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