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낙태죄,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헌재 “여성 자기결정권 침해” 판단

2020년까지 법 개정 안 하면 폐지

경남 등 여성계 “당연한 결정” 환영

기사입력 : 2019-04-11 22:00:00


헌법재판소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269조 1항과 낙태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1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11일 선고했다. 경남지역을 비롯한 여성계는 헌재의 이 같은 판단에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와 단순 위헌 의견을 합쳐 7명의 재판관이 낙태 처벌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4명(헌법불합치), 3명(단순위헌), 2명(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고 선고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위헌이나 바로 무효화할 경우 법의 공백이 생기거나 사회적 혼란이 우려될 때 국회에 시한을 주고 법 개정을 유도하는 결정을 뜻한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때 낙태를 범죄로 규정한 지 66년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이며, 270조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며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다”고 밝혔다.

이날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낙태 자기결정권’의 한도를 임신 중기에 해당하는 22주로 판단했다.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과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산부인과 학계에 의하면 현 시점에서 최선의 의료기술과 의료 인력이 뒷받침될 경우 태아는 임신 22주 내외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며 “이렇게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훨씬 인간에 근접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또 향후 입법 과정을 통해 정해야 할 구체적 허용 기간과 관련해서는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라며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지는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전인적 결정을 하고 실행할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메인이미지 11일 시민단체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주최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환영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주최측 발언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이날 헌재의 판단에 대해 경남 여성계는 ‘당연한 결정’이라며 환영했다. 김윤자 경남여성연합 상임대표는 “이날 헌재의 판단은 60여년 동안 여성들이 힘들게 싸워 온 성과로 보고 있다”며 “환영할 게 아니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고 강조했다.

도영진·이민영 기자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도영진,이민영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