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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보수와 진보의 경계에서-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기사입력 : 2019-04-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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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는 진보이고 태극기 물결은 보수일까?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이고 자유한국당은 보수일까? ‘진보적 보수’와 ‘보수적 진보’를 외쳐대는 정치인들은 회색분자일까? 오늘날 우리는 보수나 진보의 근본이념이나 철학적 의미는 내팽개쳐버리고 우선 행동으로 색깔을 드러내는 경향만 짙을 뿐이다.

프랑스혁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은 격렬한 논쟁을 통해 정치적 당파와 새로운 정치적 이념으로 발전했다. 프랑스혁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보수주의 정치 이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정치 이념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전자의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은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1729~1797)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인물은 영국계인 미국의 혁명가 토머스 페인(1737~1809)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보수주의는 반혁명의 흐름 속에서 태동했다. 이들 ‘원조’ 보수주의자는 ‘사회계약설’, 즉 개인의 권리 등을 부정하고, ‘개인’보다 국가와 교회 같은 ‘전체’를 더 중요시했다. 근대 이데올로기들 가운데 보수주의만큼 한 사람의 사상에 의존한 정치사상도 없다. 마르크스를 모르는 사회주의자가 없다면, 버크를 모르는 보수주의자는 더더욱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18세기 계몽사상의 과도한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출발했다. 버크의 사상이 ‘18세기에 대한 반란’으로 불리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이다.

진보주의의 거장 토머스 페인은 1787년 영국으로 돌아와 《인간의 권리(The Rights of Man)》를 출간한다. 프랑스혁명을 옹호하면서 영국의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을 공격한 이 책은 10년 동안 50만 부가 팔렸으며, 영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에서 공화당은 보수를, 민주당은 진보를 표방한다. 미국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자유’의 시대를 구가했다. 산업자본도 이러한 자유를 만끽하며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반면 자본의 횡포와 만성적 공급 과잉, 노동자 권리 침해, 시민사회 위축 등의 문제가 심화되었다. 그런 모순들이 폭발한 것이 대공황이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이 루스벨트와 트루먼을 앞세워, 1932년부터 20년간 내리 집권하며 뉴딜정책을 강력하게 전개했다. 뉴딜정책은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평등을 지지하는 노선의 결정체였다.

보수주의는 모든 사람이 각각 독특한 창조물이라고 바라본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각자가 서로 다른 잠재력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인간에게서 정신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을 나눌 수 없다. 오히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의 정신이다. 다만 자유를 누리되, 자기 선택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원칙들에 따라 삶을 영위해야 인간이 존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보수주의 정신이다.

반면, 진보주의는 사람은 평등하고 동일하다고 본다. 사람에게는 경제적 면이 중요하며, 그것이 보장되면 정신적인 면은 저절로 고양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평등을 기치로 내세워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개입하려 든다.

지난날 온갖 비리와 정경유착으로 배를 불린 기득권자들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불가피하다. 정부는 국민의 공감을 얻은 사안에 대해서만 선봉에 서야 한다. 그러나 평등을 명분으로 국가가 무분별하게 개입하기 시작하면, 권력은 비대해지게 된다. 그래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금언이 나온 것이다.

‘한국호’의 목적이 진보나 보수로만 달리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정책방향 설정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중용일 수도 있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을 잡는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국민을 우롱한다면 그 말로는 뻔하다. 누가 칼자루를 쥔 측이 되었든, 그 정권을 주는 건 국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하루살이 신세를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단, 국민이 깨어 있는 한!

이상준 (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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