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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참사, 위험 징후를 무시할 때 발생- 이진규(경남안전실천연합 사무총장)

기사입력 : 2019-04-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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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죽고 13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화마가 아닌 살인마에 의해서다.

이번 사건은 실제적 범행 동기를 놔두고 사건의 촉발 요인으로 작용한 다른 것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둬서는 안 된다. 동기와 이유를 알기 어려운 범행에 깔려 있는 범인의 심리상태와 의미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

범죄자가 가지고 있는 공격성과 분노 등의 개인적인 성향은 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고, 여차하면 터트린다는 것이다. 채무문제, 가족관계, 이성문제 등 사회적 스트레스는 불을 붙이는 도구로 사용된다. 촉발 요인은 다양하다. 단순히 쳐다보는 것이 기분 나쁜 것이 될 수도 있고, 범인의 말처럼 임금체불등이 촉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촉발 요인을 마치 이번 살인사건의 주요 동기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대다수는 여성, 노인, 어린이다. 범인이 건장한 남자에게는 흉기를 들이대기는커녕 계단을 그냥 내려가는 것을 보기만 하고, 저항능력이 없어 보이는 약한 사람만 골라서 흉기를 휘둘렸다. 정신질환 병력을 가진 범인이 항거하지 못할 것 같은 약자만을 대상으로 범행했다는 것은 이성을 잃어서도, 정신착란도 아니다. 그저 비겁함의 끝을 보인 잔인한 살인마일 뿐이다.

강력 범죄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치 힘세고 강한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하고 열등감이 많기 때문에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상대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다. 비겁한 범인이 복수나 범행을 하고자 마음먹었던 대상은 그들보다 강한 상대가 대부분이다. 강자나 권력, 사회시스템에 대해 복수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비겁하고 병적인 범죄의 징후는 분명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해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징후만 가지고 격리와 처벌을 할 수는 없지만, 격리와 처벌이 아니더라도 신고와 접수를 받아서 상담을 하거나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아파트 주민들이 수차례 가해자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할 동사무소와 관리사무소에 민원제기를 했지만 묵살당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주민들의 수차례 신고에도 국가기관이 위험 징후를 무시하면서 결국 참사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번 사건과 같은 참사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이상 행동자에 대해 신고와 접수, 상담과 관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지역정신건강센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원인을 분석해서 처리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하루빨리 갖춰져야만 시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을 위한 안전대책은 위험징후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진규 (경남안전실천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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