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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고래의 날’이 있는지 아십니까?- 정일근(시인·경남대 석좌교수)

기사입력 : 2019-04-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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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고래의 날’이 있다?, 없다?가 질문으로 나온다면 놀랍게도 ‘있다!’가 답이다. 4월 25일이 고래의 날이다. 2009년에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를 가진 울산시 남구청 의회가 공식 제정했다. 올해 10주년이다. 국가기념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고래 1번지 울산 장생포를 관할하는 남구발(發) 고래의 날이 있다.

‘고래의 날 제정 선언비’까지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바깥에 세워져 있다. 필자도 고래의 날 제정에 참가했다. 남구 이전에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의 모임’(회장 오창헌 시인)에서 2월 14일을 고래의 날로 제정했다. 시인들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고래의 날을 만들자 당시 남구청장이 제안해 4월 25일로 공식 제정되었다.

고래의 날 제정 선언비는 처음엔 자랑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부끄러운 비문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 보여준 기념비다. 고래의 현안과는 거꾸로 가는 ‘시계’ 꼴이다. 올해도 고래의 날이 돌아오고, 시인들이 앞장서 10주년 기념식을 가지지만 울산 남구청에 문의해도 그런 날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고래보호가 전 세계 바다의 ‘어젠다’가 된 지 오래다. 한국의 고래 문제 역시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바다에 비하면 지구에 출현한 가장 큰 동물인 고래는 사막의 모래알 같은 작은 존재다. 하지만 고래는 바다의 주요한 ‘인덱스’다. 최근 보고되는 고래의 주검을 보면 바다의 오염이 심각하다. 바다에 고래가 살기 힘들어지면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이대로 방치된다면 바다는 더 이상 사람의, 문명의 비상구가 되기 힘들다.

우리나라 고래 문제의 시작은 일본에서 출발했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우리 바다까지 수탈해갔다. 우리가 기다리는, 그리워하는 ‘귀신고래(Gray Whale)’도 일제가 씨를 말렸다. 다른 고래들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고래잡이의 역사를 남획의 역사로 바꾼 것이 일본이다.

일본이 지난해 연말 IWC(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국제포경위원회) 탈퇴를 선언했다. IWC는 1948년에 고래 자원의 적정한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다. 우리나라는 1978년부터 정식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IWC는 1986년부터 고래잡이에 대한 국제적인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일본이 IWC를 탈퇴한 것은 고래를 공식적으로 살상하겠다는, 동해를 고래의 붉은 피로 적시겠다는 야만의 선언이다. 우리나라 해안에 약 600마리가 있다고 조사된 밍크고래가 위험해진 상태다. 이는 일본과 바다가 닿아 있는 동해에 주소 두고 사는 모든 고래의 생명이 위험해졌다는 경고다. 고래를 사랑하는 사람이 모여 지켜낸 우리 바다 자원인 고래를 자기 밥상에 올리겠다는 ‘도둑질’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다. 그러나 그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일본은 바다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생명’인 ‘고래와의 전쟁’은 오래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징용 보상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듯이 고래 또한 억울한 희생자다.

세계의 많은 고래보호단체에서 일본을 규탄하고 바다에서 일본의 만행을 막고 있다. 울산의 보호단체 또한 마찬가지다. 일본이 ‘연구선’이란 미명으로 위장한 포경선에 ‘히노마루’를 펄럭이며 나타날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 고래의 날에 고래보호는 ‘적극적인 동사’가 돼야 한다.

고래, 돌고래, 상괭이마저 바다에 쳐 놓은 ‘철조망’인 그물에, ‘부비트랩’인 폐비닐에 목숨을 잃고 있다. 바다에 고래가 살지 못하면 사람에게도 바다는 없다. 고래를 아직도 환경부가 소중한 포유동물로 관리하지 못하고, 해양수산부의 생선으로 보고 있는지 안타깝다. 자국의 생선조차 관리 못하는 주제에 말이다. 4월 25일, 고래의 날에 바다를 향해 조기를 올려야겠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