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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글이 귀하게 여겨질 때- 최중기(창원시한의사회장)

기사입력 : 2019-04-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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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문화가 발달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의사전달은 글 아니면 전화였다. 많은 연인들이 연애편지에 목숨을 걸었고, 친구와 가족들이 전화통화로 약속을 잡았다. 글은 한 번 쓰기가 어렵지만 한 번 보내 두면 두고두고 남는 재산이 된다. 수정도 불가능하지만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쓰니까 주옥같은 모습으로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문학이 생겨났다. 시나 소설이나 수필을 쓸 때에도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게 된다. 자기가 쓴 글에 대한 책임이 남기 때문이다.

전화는 편리한 수단이지만 남지는 않는다. 수없이 달콤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사귀는 연인들 사이에서도 결혼한 뒤에 남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될까? 인상 깊은 한두 마디는 기억에 남겠지만 결코 전부를 기억하지 못한다. 만약에 전부를 기억하는 연인이 있다면 절대 헤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말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에 책임 소재가 적다. 물론 그 말도 이제는 영상매체의 발달로 저장되어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말과 글의 신풍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게시판 문화, 리플 놀이, 답글 등 분명히 글인데 편지와는 다르게 실시간으로 의사 전달이 되는 문화. 거기에 실시간으로 답글이 달리고 누가 언제 몇 번까지 봤는지 조회수가 쑥쑥 올라가는 문화, 진지하게 생각을 많이 해서 쓴 아름다운 글이 있는가 하면 친구들끼리 잠깐잠깐 주고받는 정겨운 농담 같은 글도 있다.

분명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글도 어느새인가 다시 보면 수정이 되어 있고 말 바꾸기가 가능한 세상이 인터넷 문화다. 불특정 다수에게 좋은 정보도 전파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쓰레기 같은 말도 같이 전파되는 세상이다.

잘 사용하면 문학작품 같은 고결함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지고, 급할 때 실시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편리함을 주고, 잘못 사용하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말 바꾸기와 저속한 집단적 언어폭행이 가능한 세상이 된 것이다. 글이 귀하게 여겨질 때는 읽어주는 독자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독자의 반응에 따라서 그 글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귀한 글들이 사람들 사이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 본다.

최중기 (창원시한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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