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경제인칼럼] 지나간 것들의 의미- 이성섭(농협중앙회 창원시지부장)

기사입력 : 2019-04-29 07:00:00
메인이미지


벌써 4월 말이구나. 지나갔던 달력을 북 찢어, 깎은 손톱을 쓸어 담는다. 지나간 시간도 의미가 있다.

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시던 지난밤, 떨어지는 벚꽃 잎이 아쉬워 연신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매년 피고 지는 벚꽃에도, 항상 이 시기가 오면 지금이 아쉬워 눈에 담으랴, 사진을 남기랴 요란법석이 따로 없다. 가만히 보면, 사람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일지도, 길을 가던 어린 학생도 벚꽃사진을 담겠다고 가던 길을 몇 번이고 멈추는걸 보니 쇼펜하우어가 “하루는 작은 일생이다”라고 말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생산성이 넘치는 하루는 늘 아쉽다. 여기저기에 치여 일을 하랴, 가족들을 챙기랴, 애를 썼던 하루의 끝에는 이상하리만치 맥주가 시원하듯, 쉽게 잠이 들기 아쉽듯, 지나간 것들의 의미는 대개 ‘여운’이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참 지나간 것들에 대해 무감각했다. 내일을 준비하며 사는 삶이 그런가 보다, 당장의 통장잔고와 여기저기에 쉴 새 없이 다그치는 전화와 문자에, 어제를 기억하기보다는 내일의 걱정이 앞선 인생이었다.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에서 뱉어낸 대부분의 한숨은 후회와 걱정의 한숨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가슴 한 칸에, 찾으려고 하면 그때서야 보이는 그 자리에, 잠시 묻어뒀던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려 본다. 어릴 적 책가방을 싸주던, 아버지와 자식들 요깃거리를 챙기겠답시고 아궁이 앞에 앉아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거듭 닦으시던 어머니를 떠올려 본다. 시간 참 빠르구나. 어린아이를 보채던 젊은 부모의 손은 밭일에, 뜨거운 증기에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졌고, 어머니의 고운 손을 움켜쥐던 아이의 손도 어느새 세월의 흔적이 녹아들었다. 그렇지만 그 세월을, 빠르게 흘러가는 아주 얄미운 시간을 오늘 하루만큼은 약간 다르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인생에서 우리는 참 많은 역경을 겪고 또 딛고 올라선다. 작디작은 시험은 물론이고, 힘에 부치던 군생활, 취업, 승진, 자녀교육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걱정과 고민거리에도, 굳건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고, 내일은 오늘의 다음 날이다. 늘 그렇듯 시작할 수 있는 용기는 어제의 기억과 추억 덕분이었다. 사람의 일생도, 벚나무의 일생도 지금 이 순간에는 모두 어제의 뒷받침이었다. 과거는 그런 것이다. 지나간 시간과 지나간 것들은 그대로 끝난 게 아니다.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순간은 날카로운 기억들로 머릿속에서 맴돌며 잠을 설친다. 하지만 기지개를 켜며 힘을 낼 수 있었던 오늘 아침 역시, 어머니의 고운 손길과 아버지의 따끔한 충고 그리고 가족들의 소중한 추억 덕분이듯,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던 내게 이 신선한 충격은 많은 걸 깨닫게 했다.

사람들이 행복한 순간을 빗대어 “꿈 같은 시간”이라 말하는 것처럼. 오늘은 ‘꿈’을 훗날의 목표가 아닌 지금 이 순간으로 만들어 보자고 다짐한다. 꿈은 그렇다. 미래지향적이다. 지나간 것, 지나온 찰나만큼은 경제학의 매몰비용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사진을 많이 찍는다. 아내의 근사한 요리도, 사랑하는 가족도, 흩날려 떨어진 꽃잎도 피사체로서 아주 훌륭하고 근사하구나. 오늘은 ‘꿈’같은 하루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의미는 이렇다.

이성섭 (농협중앙회 창원시지부장)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