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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산골 문학제- 이장중(수필가)

기사입력 : 2019-05-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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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열리는 산골문학제가 벌써 기다려진다. 매년 내가 속한 문학회에서 여는 행사인데 올해로 다섯 번째가 된다. 대자연에서 수필문학을 마음껏 풀어놓고 만나고 싶어서이다. 골짜기를 따라 이십 리를 들어가는 두메산골의 행사장으로 100여명의 문인이 찾아왔다.

주소를 알아도 바로 찾아가기가 어려워 일차적으로 한곳에 모여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차들은 좁은 도로를 줄지어 몇 굽이를 돌아서 달렸다. 더는 마을이 없을 것 같은데 다시 길은 획 돌아 가파르게 차를 이끌었다. 휘어진 소나무 같은 길을 지나니 산모퉁이에 가려 있던 마을이 나타났다. 산비탈 마을은 좁고 구불구불한 다랑논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옛날 애환과 힘겨움이 남아 있을 법한 논바닥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땀을 식히느라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을 농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돌고 돌아 도착한 여기가 의령 신반 권혜리 일명 머릿골이다. 머릿골을 품고 있는 듯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해 보이면서도 고립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와 비틀거리는 골목길은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풍경이다. 골목 안에서 납작 엎드린 채 볼품없는 집이 수필집 『지리산 종석대 종소리』 저자이자 문학회를 지도하는 작가의 고향 집이다. 좌측으로 길게 뻗어 있는 산등성이 진등재를 바라보며 문학으로 나아갈 꿈과 힘을 기르고 결국에는 지리산을 품어버린 곳이다. 비록 척박한 터전이지만 작가의 삶과 작품의 배경이 하나가 되었음이다.

문학제는 초라한 생가 마당에서 먼저 수필낭독으로 시작하였다. 무대가 없다. 자연이 무대가 되고 장식이다. 뒤란 대숲에서 이는 바람 소리만 분위기를 돋울 뿐이다. 시 낭송, 동인지『진등재수필 4호』 출간을 알리는 고유제, 문학상 시상식, 문학강연, 노래, 악기연주, 신인 작가 등단 축하 순으로 행사가 이어졌다. 산골문학제는 형식적인 것과 거추장스러운 것도 없다. 군더더기가 없고 미사여구를 자제해야 하는 수필과 닮았다. 세상의 소리에서 멀어져 고요한 산골의 품과 동화되었다.

국밥과 홍어, 문어, 망개떡으로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나섰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과 몸짓으로 자연을 맞았다. 땅의 기운은 들꽃에서 전해지고, 붉게 물든 나뭇잎과 바람 따라 날리는 계절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길섶은 들풀로 가득하다. 풀숲에서 쑥부쟁이를 발견하고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물러서서 바라보던 생소한 느낌도 들여다보니 가까워졌다. 해마다 산골에서 문학과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비록 시작에 불과한 작은 산골문학제였지만 그 열기는 뜨겁기만 했다. 도시에서 거행되는 화려한 문학행사보다 자연친화적이고, 더 감명을 받았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그곳에서 사람이 나고 문학작품의 배경이 된 곳이라면 얼마든지 가치 있는 곳으로 살아날 수 있고 훌륭한 자원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진등재 머릿골이 문학으로 삶에 지친 사람들의 치유의 공간이 되고 문학의 성소로 서게 될 날을 소망해 본다. 올해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방문해 주시기를 내심 기대해 본다.

이장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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