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거부의 길] (1582) 제24화 마법의 돌 82

“내가 보고 싶었어요?”

기사입력 : 2019-05-13 07:00:00
메인이미지


어쩌면 잿빛 하늘과 비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중충한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나츠코, 오래간만인데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소?”

이재영은 천천히 걸었다.

“찾아오면 안 돼요?”

나츠코의 목소리는 약간 들떠 있다. 흥분과 설렘으로 목소리가 높다.

“그게 아니라 뜻밖이라 그렇소.”

“내가 보고 싶었어요?”

“때때로….”

이재영은 미소를 지었다. 나츠코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키스를 하고 싶었으나 역 앞이라 참았다.

“조선에는 언제 왔소?”

“6개월 정도 되었어요.”

“그런데 이제야 나를 찾아온 거요?”

“경성으로 이사를 왔어요. 남편과 함께….”

나츠코가 그의 팔에 더욱 바짝 매달렸다. 팔꿈치가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의 부드러운 촉감에 이재영의 하체가 묵직해져 왔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경성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군인이라고 하지 않았소?”

“군인이죠. 지금은 아니지만….”

“그런데 어떻게 경성에 있는 거요?”

“부상을 당해 제대했어요. 경성에서 사업을 할 작정이에요.”

“부상이 심한가요?”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어요. 죽은 사람도 많고… 팔다리가 잘린 병사도 많은데 다행이죠. 몇 달 동안 놀더니 갑자기 사업을 하겠대요.”

“무슨 사업이요?”

“자동차운송사업이요.”

“자동차운송?”

“버스운행이요.”

이재영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군대에서 나왔으니 무엇인가 사업을 해야 할 것이다.

가을비가 내리는 경주는 한적했다. 평소라면 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을 것이다. 조선의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다니고는 했는데 대개 경주와 금강산이 중요한 수학여행지였다.

경주역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포석정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전쟁이 심해지고 있는데 사업을 할 수 있겠소?”

포석정을 살피면서 나츠코에게 물었다.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군대에서 높은 계급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자동차운송사업권을 획득한 거예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재영은 나츠코의 남편 사업에 간여하고 싶지 않았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