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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83) 제24화 마법의 돌 83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기사입력 : 2019-05-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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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은 포석정을 천천히 걸었다. 신라의 왕과 신하들이 모여서 술을 마셨다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도 없어서 쓸쓸했다. 천년고도 신라의 옛 자취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팠다. 포석정에서 나와 산처럼 거대한 왕릉과 안압지, 무너진 반월성을 걸었다.

거대한 왕릉까지 구경을 하고 나자 이미 해가 저물었다. 저녁때가 되자 비가 그쳤다. 이재영은 나츠코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여관에 들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나츠코가 이재영에게 안겨 왔다. 이재영은 그녀를 포옹하고 입술을 포갰다.

여관의 창으로 높이 떠오른 달이 보였다. 신라의 밤이다. 이재영은 나츠코와 깊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다. 나츠코는 여전히 뜨거웠다.

“남편에게는 어디에 갔다가 온다고 했소?”

이재영이 나츠코를 끌어안고 물었다.

“대구에요.”

“남자를 만나러?”

“아니요. 어떻게 남자를 만나러 간다고 하겠어요? 대구사범에서 교사를 하는 친구를 만난다고 했어요.”

여자는 남자에게 거짓말을 하고 바람을 피운다.

“이상은 내가 싫어요?”

“나츠코상이 싫으면 이렇게 사랑을 나누겠소?”

“이상 같은 남자가 내 인생에 있어서 좋아요.”

나츠코가 이상을 바짝 끌어안았다. 이튿날 아침 나츠코는 경성으로 돌아가고 이재영은 대구로 돌아왔다.

1944년 가을 이재영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사상범 박동희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죄목이었다. 박동희는 조선공산당 박헌영의 먼 친척으로 그를 따르고 있었다. 박헌영이 체포되었을 때 박동희도 체포되고, 일본 경찰의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도피자금이 이재영에게서 나왔다고 자백한 것이다.

“나는 사상범이 아닙니다.”

이재영은 공산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자금을 대주었나?”

“그들이 강제로 빼앗아 간 것입니다.”

고등계 형사는 이재영에게 발길질을 하고 각목을 휘둘렀다. 이재영은 며칠에 한 번씩 고문을 당했다.

이재영이 석방된 것은 뜻밖에 나츠코의 남편 때문이었다. 나츠코가 이재영이 체포된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고, 남편에게 말해 남편이 총독부 경무국에 압력을 넣어 석방을 하게 된 것이다.

“아내가 그대에게 신세를 졌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신세 진 것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

나츠코의 남편 시마무라가 말했다.

“나와 사업을 같이 할 것이라고 하는데 맞소?”

시마무라가 이재영을 쏘아보았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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