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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푸른 오월의 마산에는?- 이경주(시조시인·사진작가)

기사입력 : 2019-05-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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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인다던 이은상 시인을 키운 노비산 자락에서 내려와 용마산 언저리쯤에는 지하련 작가의 낡고 오래된 집을 만날 수 있다. 지하련은 같이 소설을 썼던 임화의 아내로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마산에 온 남편을 찾아와 자신까지 병이 옮겨와 햇빛 알맞게 드는 산호에 집을 짓고 살았었다. 그때만 해도 최고의 건축물로 2층 목조에 기와를 얹은 집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연만 안은 채 그 집은 오랜 세월을 무성한 나무 덤불 속에서 누구도 초대하지 않은 채 당시의 영화만 품고 서 있다.

예전에는 산호리 갈대숲을 지나 마산창의 동굴강, 서굴강까지 지나면 신마산 월포 해변에는 금빛 모래를 자랑하던 해수욕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 가포에 해수욕장이 생겼다 사라지고, 얼마 전에야 진동 광암에 다시 해수욕장이 생겨나는 걸 보면 언제 그랬는가 싶은데 벌써 한 세기를 넘어서고 있다. 그 언저리 경남대학교 자리에 있던 결핵병원도 여러 번의 이동과 개축을 해 지금의 가포 율구미 너머 자복봉과 갈마봉 안에 자리하고 있다. 마산은 당시나 지금이나 수많은 문학가들의 요양을 위한 쉼의 도시이기도 하다.

‘너는 보았는가 뿌린 핏방울을 배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선연했던 것을’라고 읊었던 김춘수의 시처럼 봄은 마산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바다로부터 봄이 오는 창원천변에서 흩날리던 벚꽃 잎이 합포만으로 치열하게 흘러가듯 시대를 거스르며 많은 생채기를 남기고 갔다. 그저 지나왔다는 핑계로 누구는 이 정도 허물쯤이야 덮어 두자고도 한다. 그러나 못다 한 숙제처럼 여전히 예술작품만으로 봐야 할지 작가 이력이 더 중요한지의 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 정신보단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평행을 달리고 있다.

마산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던 철길이 많았다. 근대에 마산역(월포동), 구마산역(노산동), 북마산역(상남동)이 생겼으니 말이다. 이것도 삼사십 년 전에는 지금의 마산역으로 통합되었다. 임항선 철길로 석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다니기도 하였다. 지금은 다 떠난 자리에 매년 문학인들의 글들이 오월이면 펄럭거린다. 이번 주부터 마산문학인들의 대표작이 전시된다고 한다. 친일, 반공과 민주를 지나 요즘은 진보와 보수가 나름의 무게를 가지고 산다는데 자유로운 시대에 편견 없는 고운 시선으로 꼭 와서 봐주길 바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이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기 다른 결로 새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을 거닐고 있는 우리네 삶의 기억은 항상 그쯤의 거리를 두고 늘 머물러 있다. 백여 년 전부터 개항한 마산의 넓은 품이 그저 자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온정은 언제나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마산을 품고 있던 창원이 이제 새로운 형태로 자리매김하듯 세월은 지나갔지만 우리가 살아온 흔적은 항상 남는 법이다. 그리고 그 흔적을 기억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한국사진작가협회 마산지부 소속의 작가 네 명이 마산탐색전 ‘그가, 어디고?’라는 사진전을 3·15아트센터에서 다음 주부터 선보인다. 사협의 작가 몇만으로 기획전이 열리는 것은 처음이며, 외부의 지원도 없이 아카이브 작업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지하련이 살던 집에서부터 이원수, 백석, 천상병이 거닐던 지금의 자유수출지역, 마산항, 북마산, 불종거리, 깡통골목, 추산의 비탈지고 좁은 길까지 마산의 근황을 속살까지 담고자 했다.

여름이 급히 와 봄이 사라졌다지만 우리 가슴속에는 늘 봄처럼 새롭게 움트고 있다.

이경주 (시조시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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