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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 이승석(경남범숙학교 교장)

기사입력 : 2019-05-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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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가정의 달이면서 청소년의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해 우리나라 행정부처에서 하는 청소년 행사가 공식적으로 123개나 진행했거나 예정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하는 행사까지 포함하면 아주 많다. 그만큼 청소년은 우리 미래의 꿈이자 자산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청소년 정책이 입시 위주의 경쟁 중심에서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정책을 조심스레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로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은 입시 위주의 경쟁을 통해 학교교육이 실시되고 있으며, 대부분 어른이 정해준 길로 강요하며, 다른 길을 선택하는 청소년을 잘못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공교육이 안고 있는 모순과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체계적이고 안정된 학교교육을 운영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 교육정책은 다윈의 진화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모든 생명체는 약육강식의 원리에 생활하고 진화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약육강식 대신 정의, 배려, 합리적 경쟁원리로 지성과 도덕성에 따라 작동한다. 이에 반하는 것은 반지성적, 반도덕적 즉 약육강식 원리에 충실한 생존방식, 바로 폭력이다. 지금 우리사회와 학교에서 폭력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핀란드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핀란드의 부모와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결코 1등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라고만 말한다. 다르게 살면 모두가 1등이 될 수 있다. 핀란드 학교에서는 1등을 메기지 않는다. 방과 후 아이들은 제각기 필요한 것과 원하는 활동을 한다. 누구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소질과 취향을 발굴하고 계발하는데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경쟁의 장에 나와서 최선을 다해 즐겁게 경쟁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가 최선의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모든 아이들이 정의와 배려의 경쟁에 참여 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으면, 폭력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학교는 성적을 높여 주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가능성을 높여 주어야 한다. 그 가능성을 높여 줄 수 있는 학교가 많이 늘어나고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농부 같은 마음으로 청소년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농사를 잘 지은 농부에게 어떻게 이렇게 실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별로 한 게 없다. 씨앗이 알아서 잘 자라 열매를 맺은 것이지, 나는 그냥 심고 물주고 거름 준 거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씨앗은 스스로 자란 것이다. 하지만 좋은 기후는 농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농부는 지금은 작지만 언젠가는 실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과 정성스럽게 계속해서 물을 주고 기다린 것이다. 물은 한꺼번에 줄 수 없으며, 오늘 물을 주었다고 해서 다음날 바로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다. 즉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끝으로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사회는 무엇일까? 어느 인류학자가 아프리카의 한 부족 아이들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누구든 저 과일바구니까지 먼저 뛰어간 사람에게 바구니 속 과일을 모두 주겠노라 약속했다. 인류학자의 말이 전달되자 아이들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고 바구니에 다다라서는 모두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닌가? 인류학자는 일등에게 과일을 몽땅 주려고 했는데 왜 손잡고 함께 뛰었느냐고 물어보자 아이들은 Ubuntu라는 단어를 합창하듯 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아이가 말을 했다. “일등을 하면 나머지 아이가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 있나요.” Ubuntu는 아프리카 코사어로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5월 가정의 달과 청소년의 달을 보내면서 Ubuntu를 진지하게 묵상해 보는 건 어떨까?

이승석 (경남범숙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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