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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욕(辱)의 카타르시스- 허만복(경남교육삼락회장)

기사입력 : 2019-05-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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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내내 주말만 되면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다가 모처럼 초여름 날씨처럼 쾌청하니까, 아파트의 놀이터가 꼬마들 때문에 빈틈이 없고 왁자지껄하다.

그네타기, 술래잡기, 딱지치기 등을 재미있게 하는가 하면 한쪽에선 싸우다가 울면서 욕설을 하는가 하면, 그래도 화가 안 풀렸는지 고함을 지르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가며 울고 있다.

꼬마들의 노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고 있던 노부부가 우는 애를 달래주며 “욕설을 하면 나쁜 사람 된다”고 좋게 타일러 주는데,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국회의원들이나 어른들도 거짓말과 욕설을 예사롭게 하는 세상인데 어린아이들을 나무라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뭔가 다급하거나 핍박하며 윽박지르고 싶은 게 있을 때 불쑥 튀어 나오는 게 욕이다. 국문학자 김열규 교수는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에서 욕의 불가피한 충동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욕은 예삿말로 다스리지 못하는 어긋남이고, 막다른 골목에서 쏟아내는 ‘막가는 말’이라고 했다.

단체나 조직에서 소외되거나 일탈의 두려움과 초조감이 욕으로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말다툼이나 언쟁이 벌어지면 내실이 빈약하거나 궁지에 몰린 쪽에서 먼저 언성을 높이고, 행동이 불안해지고 욕설을 내뱉는 것이 상례이다.

우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TV토론을 봐도 준비가 잘 되어 자신이 있는 출연자는 유머나 사례를 들어가면서 여유 있게 발언을 하고 내용도 충실하다.

반대로 논리가 허술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은 말에 조리가 없거나 쉽게 열을 올려 감정을 앞세우게 된다. 요즘 우리 정치판은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식’으로 막가고 있다. 사이버 광장의 욕설이나 청와대 청원 코너는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저주에 가까울 정도로 횡포화되어 가고, 그래도 지역감정 때문에 무언의 감정들이 내재돼 있는데, 청원코너 때문에 똘똘 뭉쳐도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힘든데, 참여자의 열성이 넘쳐 분열이나 이간이 될까봐 걱정 아닌 걱정도 해본다.

최근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 즉 우리나라의 최고의 화이트칼라 집단이 내뱉는 원색적인 행동과 욕설도 욕의 사회학으로 풀면 뭘 뜻하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인품이나 학식, 직책 등 어떤 면을 보더라도 상말을 할 처지는 아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X같은, G새끼 등 비하한 것은 요즘 의원들의 정서적인 불안 심리와 1년 후의 다급한 심기를 들어내는 무언의 표현일 것이다.

욕설도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는지 모르나 욕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욕설이 난무한다는 것은 사회가 불안하고 무질서함을 나타냈다고 했다. TV의 난장판에서 이전투구하는 모습은 5월의 싱그러움과 같은 앞날이 창창한 어린이들이 아무 죄의식 없이 보고 배우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허만복 (경남교육삼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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