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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고한 지역주의 벽 허물려 했던 ‘바보 노무현’

2007년 12월 청와대기자단 송년회서 열린우리당 해체에 비통한 심경 밝혀

“지역구도 극복 못한 것 가슴 아파. 정책으로 대결하는 정치가 이상적”

기사입력 : 2019-05-22 22:00:00


2007년 12월 26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단과 송년 만찬을 가졌다. 사실상 공식 고별행사였다. 일주일 전인 19일 제17대 대선에서 여당이 패배한 터라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비공개를 전제로 한 행사여서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은 발언이다.

노 대통령은 약 1시간에 걸친 모두·마무리 발언을 통해 ‘정치인 노무현’을 술회했다. 정치철학과 인생관, 언론과 갈등 등 늘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 걸쳐 거침없고, 쉼없이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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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부산시장 후보 출마 당시 선거 포스터가 붙은 사무실에서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노무현재단/

그는 무엇보다 지역구도를 극복하지 못한 정치현실을 수차례 “가장 가슴 아프다”는 표현으로 개탄했다. “정치인으로서 최대 뉴스를 꼽는다면, 열린우리당 파당(破黨)이다”며 “좋은 뉴스 나쁜 뉴스를 합해 제일 큰 뉴스다. 열린우리당이 깨져버렸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를 뛰어넘는 정치, 정책으로 대결하는 정치가 이상적이고 합리적이다. 당연히 그쪽으로 가야 한다.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지역구도가 한 요인이다. 극복해야 할 정치 과제”라고 했다. 중간중간 영빈관 천장을 응시하며 발언을 멈추기도 했다.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영남 소장파와 호남 신주류가 주축이 돼 2003년 출발한 열린우리당은 3년 9개월 만인 2007년 8월 문을 닫았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은 그저 노무현당이 아니라 지역당에서 정책당으로, 전국당으로 향한 나의 도전적 가치였다. 모든 정치적 가치를 바친 가치였다. 전략적으로 ‘탈(脫)호남’함으로써 호남 출신도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치구도를 만들기 위한 회심의 전략카드였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하지만 당 해산으로 토양을 싹 뭉개버렸다. 난파했다. 선장과 선원이 합심해 키를 잡고 노를 저었으면 형체도 없이 깨져버릴 정당이 아니었다”며 “가슴 아프다. 정치적으로 회복할 수 없고 노력해볼 방법이 없다. 고향에 가더라도 정치후원자라도 돼 볼 생각이었는데….”라며 수차례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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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온 지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경남신문DB·노무현재단/

‘지역주의 타파’는 노 대통령 필생의 과업이었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그만두고 1987년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던 그는 이듬해 정치에 입문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부산 동구 후보로 나서 당선돼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치른 5번의 선거에서 4번 낙선했다.

1992년 제14대 부산 동구에서 재선에 나섰다가 패배했고 이어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996년 제15대 총선에 도전했다가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1998년 ‘정치 1번지’라고 불리던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 당선됐지만 2000년 제16대 총선에 종로구 공천을 마다하고 부산 강서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변함 없이 지역주의 타파, 전국민 통합을 외쳤지만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긴 상대편 후보에 되레 크게 졌다.

낙선 후 그는 “부산사람들을 욕하지 말라. 지역주의는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주의가 이기주의와 편견, 독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우리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에서만 연거푸 낙선한 그를 두고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가 일생 동안 목청 높여 외쳤던 지역주의 타파는 그의 희생이 밀알이 되어 사후 10년이 지난 지금 현재진행형이다. 강고한 지역주의 벽은 서서히 무너지고 탈권위주의는 속도를 내고 있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처음 부산에서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현재 부산의 지역구 의원 중 3분의 1이 민주당 소속이다. 경남에서는 16개 선거구 가운데 3석이 민주당 소속이다. 특히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비롯해 서울, 부산, 울산 등 과거 한국당이 독점하던 지역의 광역단체장을 싹쓸이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도내에서도 창원, 통영, 김해, 거제, 양산, 고성, 남해 등 7개 기초지자체장을 배출했고 전 선거구에 민주당 소속 후보를 냈다. 도내 기초의원 정수 264명 중 민주당이 104명(현재 103명), 한국당이 133명 당선됐으며 특히 창원시의회 경우 민주당과 한국당이 동수를 이루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과거 보수정당의 ‘텃밭’으로까지 불린 지역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정치적 사지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지역주의를 떨쳐내고 통합과 화합의 지도자가 되겠다 외쳤던 그가 뿌린 씨앗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뒤를 이어 지역주의를 타파하려는 실천을 해온 대표적 인물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세 번째 도전 만에 창원시장에 당선된 허성무 시장이다.

허 시장은 당선 직후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역시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며 “지역차별 없는 사회, 지방분권을 위해서 무던히 애썼던 분이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늘 주장해 왔는데 그런 정치적 대의에 공감해서 함께해온 세월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허 시장은 “노 대통령에게 배웠고 그로부터 시작했다”며 “그의 노력·바람대로 지역감정의 벽을 뚫고 민주당이 전국 정당이 됐다. 보고 싶고 그립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열린우리당, 2008년 통일민주당, 2012년 민주통합당, 2016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창원 마산회원구에 연이어 출마했다 낙선한 하귀남 마산회원지역위원장도 그랬다.

하귀남 위원장은 “노 대통령께서는 떠나셨지만 노무현 정신을 남겨주고 가셨고 저 역시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았다”며 “정치를 하는 한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이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퇴임 후 노 대통령이 회고록에 남긴 말이다. “지역주의와의 싸움과 기회주의와의 싸움, 이것이 정치를 하는 동안 제게 주어진 두 개의 큰 싸움입니다. 그래서 저는 ‘원칙과 통합’이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대통령선거를 치른 것입니다. 저는 원칙에는 매우 까다롭게 매달리지만 통합을 위해서라면 어떤 다른 가치도 희생할 수 있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이상권·김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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