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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보따리와 5월, 여성의 역사- 이경옥(경남여성단체연합 여성정책센터장)

기사입력 : 2019-05-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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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일 년에 한 번 외할머니 제사 때인 석가탄신일에 친정인 경기도 여주시에 형제자매들을 만나러 가신다. 몸이 편찮으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안 빠지고 일주일 정도를 막내 외숙 댁에서 머물면서 무언가를 보따리에 싸서 가져 오신다. 내려오시는 지난 토요일 비가 많이 내려서 시외버스터미널에 마중 나간다고 터미널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어머니가 내 차를 타다 말고 “아이고, 보따리 두 개를 두고 내렸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당신이 정신없음을 자책하면서 엄청난 걱정을 하셨는데, 나는 위로를 한답시고 “보따리는 가서 찾으면 되고, 없으면 또 없는 거지… 돈 보따리도 아닌데…” 하고 핀잔을 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나, 45년 전 돌아가시고 없을 때에도 평생을 힘든 일을 하면서 자식들에게 먹이기 위해 헌신을 했다. 그런데도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주장하고, 요구하지 않는다.

엄마가 내려오신 그날 5·18 민주화운동 때 광주의 어머니들이 폭도나 ‘빨갱이’로 몰린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수십 년간 투쟁한 활동과 모습들이 방송에 나왔다. 또 가두방송을 했던 여성, 시위에 참여했던 여성, 간호했던 여성들이 잡혀가 남성들과 다르게 성폭행을 당했던 증언을 힘들게 했다. 나는 우리지역 여성단체 회원으로 막 입문했던 1986년, 회원들과 함께 독일기자가 찍은 5·18 영상과 사진을 보았다. 그때는 지금 공영방송에도 나오는 영상을 보는 것은 불법이라 보안을 철저히 하면서 몰래 보았다. 그 영상을 처음 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많은 증거와 증언들로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아직도 진실을 은폐하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지역에서 1986년부터 진보적인 여성단체를 준비하여, 87년에 지역 진보여성단체 최초로 마산에서 경남여성회를 창립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남성 중심의 민주화 운동단체들은 같이 운동하면 되지 왜 여성단체를 따로 만들어 ‘분파적인 운동’을 하냐면서 비판하였다. 그때는 운동권 내에서도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 역할과 꽃과 같은 역할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성의 목소리로 민주화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여성단체들이 만들어졌으며, 1987년 민주화항쟁에 함께 참여했다.

지난 5월 17일은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 3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날을 계기로 한국의 여성운동은 젊은 여성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되었다. 3년 전 딸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 무섭다, 내 또래가 여자라서 살해당했어, 나도 그쪽에 자주 가는데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나도….’ 그래서 딸은 친구들과 강남역 가서 포스트잇을 붙이고 묵념을 했다고 말했다. 20대 여성들이 느끼는 불법촬영 유포, 성폭행, 데이트폭력, 살해 공포는 예민하거나 과한 것이 아니다. 막 성인으로 인정받는 20대 여성들에게는 나이가 어린다는 이유로, 또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대상화가 중첩적으로 작동이 되어 위협과 불안을 느낀다. 평범한 20대 여성들이 왜 강남역 살해사건에 자신의 일인 양 느끼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연대를 할까. 작년에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6차례 ‘불법촬영 규탄집회’에 왜 참가했을까.

올해 5월은 남성의 역사로 쓰여진 5월의 역사를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역사를 다시 쓰는 흐름이 있었다. 역사는 남자의 서사뿐만 아니라 여성의 서사도 함께 기록돼야 인간의 역사가 될 수 있다. 엄마의 보따리에는 엄마가 여주에서 뜯어온 돌미나리, 고사리, 달래 등이 들어있었다. 돌미나리와 달래를 삶아 먹으면서 엄마에게 퉁명하게 말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달콤 씁쓸한 돌미나리 맛을 음미한다. 모녀 삼대는 세대와 사건은 다르지만 여성억압의 동일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경옥 (경남여성단체연합 여성정책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