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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핀란드

영화 속 그곳에서' 힐링 한 스푼' 얹다

기사입력 : 2019-06-12 20:03:46

N번째 이별, 살면서 맞이한 수많은 이별 중 하나였을 것이며 특별하다 말했지만 수많은 특별함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무너져 가는 그 시공간 안에서 새어나오는 환영들에 시달려가며 초점 없는 눈이 바라보는 곳은 이미 현생이 아니라 그 다음 혹은 다른 차원의 생을 바라보는 듯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서 한 일은 정신없이 영화와 책을 보는 일이었다.

그때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를 처음 봤다. 닥치는 대로 읽던 시절이고 닥치는 대로 보던 때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때 한 달 간 읽은 책이 15권이었고 영화는 하루에 한 편 이상씩을 봤다. 그 중에 한 영화였다.

‘카모메(갈매기) 식당’이라는 일본 영화가 내 타입의 영화는 절대 아니었지만 이별을 겪은 나에게 이상하리만치 좋은 영화로 다가왔다. 영화를 보고 결정했다. ‘카모메 식당으로 가자, 핀란드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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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이미지영화 ‘카모메 식당’에 나왔던 아카데미아 서점. 헬싱키에 가면 영화에 나온 다양한 장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
메인이미지헬싱키 성당.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인 핀란드, 헬싱키로 가자고 결심했다. 어차피 한국에서는 며칠이 지나도 내게 내일이 오지 않는 것 같던 시간들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다니던 회사에도 정직을 신청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갑자기 떠나버렸다. 아주 예전에 스위스를 잠깐 다녀왔었던 이후 처음 가는 북유럽여행은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시작됐다. 헬싱키를 가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경유지로서 헬싱키를 많이 가봤을 것이다.

실제로 유수의 굵직한 여행사에서 스웨덴이나 다른 북유럽 국가를 가는 경유 항구로서 헬싱키를 잠깐씩 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내 티켓에는 리턴 날짜는 없었고 최장 2주 정도를 생각한 채, 그저 카모메식당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떠난 여행이었다.

메인이미지배들이 다니는 항구도시 핀란드.

핀란드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점은 이곳에서 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니, 말이 통할 리 없었다. 내가 스칸디나비아 언어라거나 스웨덴 말을 해본 적이 있을 리도 없었다. 여행가로 살아오는 동안 독학으로 터득한 영어가 꽤나 유창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유독 불편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좋았다.

내 아픈 기억들과의 대화와 길도 그냥 걸어, 걸어가길 바랐던 때, 타인과 소모적인 대화를 위해 떠나왔던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강제로 나는 침묵하게 됐고,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대화만으로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미 여행에는 일가견이 있던 터라, 지도만 펼쳐 봐도 대충 동선이 나왔다. 크지 않은 도시, 쉬워 보이는 길, 별로 목적이 없었던 여행이지만 굳이 시간을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될 법한 보폭으로 걸어서 온 도시를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크지 않은 곳, 많은 것을 바랄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마침 날이 화창했다. 핀란드의 국기와 닮은 날과 풍경들이었다. 며칠째 이 나라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흔적들을 찾아다녔다.

메인이미지헬싱키 도심 가운데 있는 푸른 길.
메인이미지쾌적한 헬싱키 시가지.
메인이미지헬싱키의 맑고 화창한 하늘.

거의 모든 곳이 그 영화의 풍경 같았지만 이리저리 찾아 본 결과 영화 속 ‘카모메 식당’이 실제 헬싱키 어디 구석에 존재한다는 정보를 보고 내 헬싱키 여정은 그 식당을 직접 찾아가는 여정으로 바뀌었다. 물론 급할 것도 없었고 급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크지 않은 도시, 걸어도 구석구석을 보기에 충분한 시간, 영화 속 주된 장소인 식당이 아니더라도 주인공들이 걷는 길, 만나는 장소 등을 보러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헬싱키에서조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비단결의 아름다운 뱀 같은 그녀가 가슴을 죄어오고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도사리고 있었다. 그냥 생각과 목적없이 걷기에는 드문드문 말을 거는 이별 화면 속의 그녀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뭔가 다른 것을 이뤄야 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했어야 했다. 어쩌면 그 집중해야 할 무엇인가가 바로 영화 한 편 때문에 대책 없이 결정 난 여행지에서 그 영화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는 일이었을 것이다.

핀란드라 하면 유명해서 미리 알았던 것이, 몰락한 노키아, 앵그리버드의 나라, 무민의 나라 정도였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알바 알토’의 디자인 국가까지, 그리고 사실은 금지 단어라 볼 수 있는 한국인들만의 ‘휘바휘바’(핀란드에서는 대체 왜 꼭 한국인들은 여기 와서 자일리톨을 그렇게 찾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어딜 가나 몰락한 노키아를 대신해서 무민 캐릭터 관련 상품이나 앵그리버드에 관한 관광상품들이 즐비해 있었고, 무엇보다도 헬싱키를 오가며 느낀 것은 북유럽 디자인이라고 대표되는 이미지가 도시 곳곳에 즐비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알바 알토’의 디자인 혹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북유럽 디자인’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었고, 그 디자인의 가장 훌륭한 점은 무엇보다도 자연 경관을 해치거나 그 도시의 풍경과 불협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메인이미지‘알바 알토’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건물.

헬싱키에서의 시간이 남들이 머무는 시간에 비해 오래될수록 내 걸음도 생각도 그 도시와 같은 호흡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경계 없이 정해져 있지 않던 시간 속에 느린 호흡의 여행은 아마도 처음으로 현지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경험까지 가지게 했다. 북유럽의 찬란한 태양을 정면으로 올려보며 응시하고 있노라면 그 안에 응답이라도 있을까 했던 종교적인 시간들이 내 여행 안에 들어있었기도 했거니와 세계 건축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특이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교회이기 때문에 꼭 한번은 들어가고 싶게 생겼었다.

‘캄피 고요의 교회’라는 곳에서 혼자 드리는 예배는 돈 냄새 나지 않고 나와 신 사이에 중개자의 주절거림 없이 빈자리들을 고요만이 채우던 시간이었다. 그 이전 이후로도 여행지에서 예배를 드려본 적은 헬싱키의 이 교회에서가 유일했다.

메인이미지캄피 고요의 교회.
메인이미지헬싱키의 밤하늘.

그렇게 유의미하면서 무의미한 명상과도 같았던 시간들이 흐르고 흘러 여행의 마지막이 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을 하고 드디어 다음날 출국이었던 그날, 나는 지도에 이미 표시해 둔 카모메 식당의 위치를 확인하고 시간 계산을 해보았다. 넉넉히 시간을 두고 매일 가던 길들을 거쳐서 그동안 참을성 있게 숨겨뒀던 이 여행의 목표지를 향해 걸어갔다.

식당이 멀리 보였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여유로이 앉아 식사라도 한 끼 할 수 있을까(당시도 실제로 식당으로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멀리 보이는 식당 근처의 많지는 않지만 딱 헬싱키에서 느꼈던 여유만큼의 사람들이 줄서 있었다. 카모메 식당이 아닐 리 없는 곳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멀찍이 보이는 식당을 보고 있던, 방금 이야기했던 그 자리 위치에 멈춰 섰고, 카모메 식당을 더 가까이서 보지 않은 채 그냥 돌아섰다. 여행도 N번째 이별도 어느 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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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