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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구화지문(口禍之門)-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기사입력 : 2019-06-12 20:48:54

말(言)은 품격이다. 말의 속도, 목소리 고저, 어휘 선택에서 사람의 품성과 수준이 엿보인다. 말 한마디로 됨됨이를 가늠할 수 있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은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뤄졌다. 말이 차곡차곡 쌓여 품격이 된다는 의미다. 말은 내면의 외형화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이 되고, 인격은 인생이 된다’고 했다. 말은 곧 인생 품격을 결정하는 시발점이다.

▼말이란 적을수록 좋다는 게 전통적 관념이다. 옛사람은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고(寡言無患), 말을 삼가면 허물이 없다(愼言無尤)고 했다. 중국 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후당, 후진 등 여러 왕조에서 여덟 명의 황제를 섬기며 벼슬을 한 풍도(馮道)란 인물이 있다. 그에게 처세술을 묻자 ‘설시(舌詩)’에 그 답을 남겼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舌是斬身刀).” 말조심하라는 얘기다.

▼현대는 말 배설의 시대다. 생각과 감정을 언제든 표출할 수 있는 ‘SNS 시대’는 품격과는 멀어졌다. 굳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간다. 마음을 정제할 시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말로써 말을 만드니 각종 구설과 화를 자초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전파력도 상상을 초월한다. 순식간에 수많은 이들의 귀로 흘러 들어가 입을 통해 퍼진다. 상대를 향해 퍼부은 말의 화살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의 등에 꽂히게 마련인 게 세상 이치다.

▼말 아끼기가 말 많이 하기보다 어려운 세태다. 정제된 언어와 수준 있는 담론으로 정국을 논해야 할 정치권이 연일 막말 배틀이다. 인격 모독적이고 폐부를 찌르는 독설이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낯뜨거운 수준 이하의 자극적인 비판과 말꼬리 잡기가 횡행한다. ‘설저유부(舌底有斧. 혀 밑에 도끼가 있다)’라고 했다. 남 헐뜯는 자는 그 도끼로 남을 베는 것은 물론이고 종국엔 자신도 베게 된다.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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