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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605) 제24화 마법의 돌 105

‘아직은 관망하는 게 좋겠다’

기사입력 : 2019-06-14 08:01:45

1945년 가을은 사람들에게 축복과 희망의 계절이었다. 이승만 박사를 비롯하여 김구 주석 등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이 속속 귀국하고, 나라를 세우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재영은 나라를 세우는 일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군정청이 자유로운 정치 행위를 허가하여 여기저기서 정당이 설립되고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누구나 정당을 설립하고 나라를 세우는 일에 나섰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폐간되었던 신문들도 복간되어 새로운 소식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이제는 나라를 위해 나설 때입니다.”

이재영에게도 참여해 달라고 정당들이 요구했다.

“제가 무슨 자격이 있습니까?”

이재영은 정중하게 사양했다.

“하하. 이 선생이 자격이 없다면 누가 자격이 있겠습니까?”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재영은 많은 생각을 했다. 이재영은 독립운동을 한 일도 애국운동을 한 일도 없었다. 대구를 거점으로 장사를 하여 부를 축적했으나 나라에서 손꼽힐 정도의 갑부도 아니었다.

‘아직은 관망하는 게 좋겠다.’

이재영은 스스로 다짐했다. 미군정이 실시되고 있었으나 그는 장사에 열중했다.

‘세상에서 불변하는 것은 돈의 힘이다.’

이재영은 당분간 장사만 하기로 했다. 조선에는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많은 집과 공장 등 재산이 있었다. 그러한 재산은 모두 군정청에 귀속되었다.

군정청은 해방 이후 일본인들과 거래한 재산은 사유재산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당시는 많은 사람들이 어리숙했다. 일본인들이 두고 간 땅이나 집을 자기 것이라고 깔고 앉는 사람도 있고, 남의 것을 탐내면 벌을 받는다고 잘 관리하고 있다가 돌아오면 되돌려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인들이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고 했어.”

일본인들 중에는 반드시 조선으로 돌아오겠다고 앙심을 품고 돌아간 자도 있었다. 그들이 돌아올까 봐 불안에 떠는 조선인도 있었다.

일본인들이 두고 간 재산은 많은 조선인들에게 기회였다. 적산가옥 등 일본인 재산을 미군이 관리하거나 불하했다. 경찰이나 행정 관청도 미군정 소속이 되었다.

서울의 종로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백화점이 있었다. 마츠모토라는 이름이었다. 일본인이 돌아가자 미군정으로 넘어갔고 불하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장님, 마츠모토 백화점을 불하받으세요.”

서울 남대문에 있는 삼일상회의 이철규가 대구까지 내려와서 말했다. 이재영은 그를 데리고 대구의 요릿집으로 갔다. 이재영은 백화점에 관심이 있었다. 다만 아직은 자신의 능력 밖이라고 생각했다.

“백화점을 불하받으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재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나라에도 백화점이 필요할 때입니다. 혼자서 인수하기 어려우면 다른 사람과 합동으로 불하받으세요. 언제까지 불하가 계속될지 모릅니다. 누가 채갈 수도 있고요.”

이철규는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이재영을 설득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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