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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슴도치의 딜레마- 허만복(경남교육삼락회장)

기사입력 : 2019-06-20 20:30:40

사회생활의 대인관계에 있어서 팔불출(八不出)이란 말을 들으면 좀 창피하고 낯 뜨거운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팔불출이란 말을 예사로 듣고,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이 생각한다. 팔불출의 원래의 뜻은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여덟 달만에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 팔삭동(八朔童)을 말하는데, 좀 모자라거나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예사로 쓰는 말을 말한다.

요즘은 자기 PR시대라서 그런지 자기 주위 사람, 즉 집사람 또는 자식 자랑을 예사롭게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사회생활의 현명한 방법이라고 했다. 적당한 거리는 가까이하기도 어렵고 멀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을 말하는데, 흔히들 이런 상황을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하며, 적당한 거리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저서 고슴도치의 딜레마 이야기에서, 추운 겨울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을 기댔는데, 너무 가까우면 상처를 입고 떨어지면 추워지므로 서로가 많은 시행착오 끝에, 상처를 주지 않고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는 거리를 찾아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여야가 딜레마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회는 개점 휴업상태로 벌써 몇 달째 공전만 계속되고 있다. 농단 때문에 정권이 바뀌더니 또 다른 농단 때문에 건국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고, 사법 및 남북, 외교문제 등 여러 가지 정쟁 때문에 정국이 칠흑 같은 느낌이다. 북미의 외교문제, 여야의 각종 아귀다툼의 후유증, 한일관계 등 평행선을 달리는 철로와 같이 종착점이 보이지 않아, 돌파구를 국회 안건의 빅딜에서 찾으려고 서로 기 싸움 때문에 정국이 더욱 혼란스럽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듯이 아무리 깜깜해도 우리의 정치는 딜레마에서 헤어날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지만, 결국 정치적인 딜레마의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고슴도치 딜레마의 심리와 같이 서로 피해와 어려움을 주지 않는 단체나 개인의 인간관계 초기부터 상대방과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요즘 유행하는 말로 철벽을 친다고 한다. 사실 인간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애착관계를 형성한다는 건 그리 쉽지 않으며, 특히 세월이 갈수록 핵가족화되고, 일인 가족이 늘어나 개인주의와 딜레마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돼 사회적으로 문제화되고 있으며,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면서도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삶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이해, 정보 교환이 딜레마 극복의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허만복(경남교육삼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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