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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의 대물림, 생후 2개월 아들에게 이어진 폭력

생후 2개월 아들 학대 숨지게 한 친부

유년기부터 아버지에게 폭행 당해

재판부 “가정폭력 후유증 일부 발현

기사입력 : 2019-07-07 20:44:41

‘사랑하는 아들아 미안하다. (내가) 폭력을 당해봤는데도 내가 그랬다는 사실에 놀랐고 스스로 원망했다. 도저히 내가 용서가 안 된다.’

생후 2개월 된 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친부 A(30)씨의 너무 늦은 후회였다. A씨는 지난해 1월 양산 소재 자신의 집에서 아이의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상반신을 힘껏 묶고, 아이의 머리뼈가 부러지도록 강하게 때려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치사)로 재판에 넘겨졌다.


울산지방법원 형사11부(부장판사 박주영)는 지난 5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판결문 25장 중 절반 이상을 구체적인 범행 전후 상황 등의 양형자료를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이 사건이 우리사회의 아동학대의 폐해가 선연히 드러난 사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꼼꼼히 기록하고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 아동학대의 원인과 그 심각성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우리 사회로부터 영원히 추방하고자 함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의 판결문을 통해 우리 사회 아동학대의 단면을 들여다봤다.

▲은밀하고 잔혹한 학대= 키 63㎝에 가슴둘레 40.7㎝, 발길이 각 9.5㎝, 생후 71일 만에 세상을 떠난 아이의 몸은 너무 조그맣고 참담했다. 부검결과 아이의 이마와 뒤통수, 눈 부위에 걸쳐 출혈과 골절의 흔적이 발견됐다. 또 아이의 오른쪽과 왼쪽 갈비뼈 다수가 골절돼 있었고, 배 안에는 응고된 혈액이, 양쪽 허리 부위에서 부종을 동반한 출혈이 발견됐다. 이 흔적들은 모두 아이의 아버지 A씨가 만든 것이었다.

A씨는 지난 2018년 12월 하순부터 ‘모로반사’(발을 벌리고 손가락을 밖으로 펼쳤다가 무엇을 껴안듯이 다시 몸쪽으로 팔과 다리를 움츠리는 행동) 반응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우는 아이를 학대했다. 잠에서 자꾸 깨서 우는 아이의 가슴에 딱밤을 때리거나, ‘모로반사 반응’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샤워타올 2장으로 아이의 몸통과 무릎 부위를 세게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A씨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꽉 묶어야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며 아이 몸에 멍이 들고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세게 묶었다. A씨는 이렇게 아이를 하루 15시간 가량 묶어두면서도 학대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이의 엄마는 “왜 그렇게 몸을 세게 묶느냐”고 묻기만 했을 뿐 방임했고, 아이를 데리고 다녔던 병원에서도 A씨의 학대를 인지하지 못했다. A씨는 다음 날 아이에게 분유를 주려다 아이의 눈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보고 119에 신고했다. A씨는 119의 안내로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하며 아이를 살리려 했다. 그러나 결국 아이는 머리뼈 골절,경막밑출혈, 거미막밑출혈, 뇌멍 및 뇌부종 등으로 인한 머리부위 손상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빈곤과 육아 스트레스로 발화= 재판부는 이 사건 발생의 주요 원인을 대출채무 독촉 등 경제적 문제에 육아 부담 가중으로 인한 A씨의 스트레스로 분석했다. A씨는 평소 폭력 성향이나 음주나 약물로 인한 문제가 없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주말에는 딸과 키즈카페를 가거나 가족들과 외식을 했고, 월 1회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는 정도가 대인관계의 대부분이었다. 결혼 후 다니던 전자회사를 그만 두고 아내와 함께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게임 아이템 채굴’을 시작했다. 여러 대의 컴퓨터로 동시에 인터넷 게임에 접속해서 하루 18시간 동안 이른바 레벨 업에 필요한 아이템을 구해 다른 게이머에게 팔아 소득을 올리는 일이었다. A씨는 이 일을 통해 하루 8~10만원을 벌었다. 그러나 지난 2018년 11월 태어난 둘째 아이가 폐렴으로 약 2주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곤란을 겪게 됐다. 생각치 못한 치료비가 지출됐고, 입원으로 게임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수입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기존 대출금 독촉에 재산이 압류될 위기에 처했고, 그 책임이 아이에게 있다고 생각하면서 학대가 시작됐다.

▲슬픈 대물림, 아동학대= 재판부는 양형자료에서 A씨에게 유리한 정황으로 A씨가 유년기와 청소년기 겪었던 가정폭력이 돌발적 폭력행사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했다. A씨의 부친은 주사와 가정폭력이 심한 편이었고, A씨의 초등학교 1학년부터 성인시절까지 이유 없이 폭행을 가했다. A씨의 모친은 부친의 폭행으로 입원 후 이혼했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한 가정폭력의 후유증이 일부 발현된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연구자료에 따르면 아동학대에 노출된 아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정신과적 장애를 가질 위험이 높고, 단지 부모 간 폭력을 목격만 한 경우에도 그 결과는 성인기까지 계속 이어지며 ‘우울, 트라우마, 반사회적 행동, 일반적 폭력 및 배우자 폭력’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합당한 이유는 없어= 그러나 재판부는 “A씨에 대한 유리한 정황을 모두 참작하더라도 자기 아이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앗아간 이 어이없고 참담한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아동학대 근절을 간절히 염원하고 당부했다. “당원은 참담한 심정으로 아동학대 사망자의 마지막 이름이 이 아이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말을 안 듣는다고, 남의 물건을 훔친다고, 경제적 형편이 어렵다고, 육아에 무지하다고,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통이 극심하다고,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아이를 학대하고 죽인데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부모를 잃은 아이는 고아라 부르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를 부르는 호칭은 없다. 그 슬픔이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든 처지에 있든, 그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를 잃은 부모는 절대 피고인으로 불려서는 안 된다.”

조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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