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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에 대한 소고(小考)- 서영수(수필가)

기사입력 : 2019-07-11 20:21:51

동해의 푸르름을 따라 해파랑길을 걷는다. 남해와 동해를 나누는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생인손보다 더한 아픔을 간직한 ‘통일전망대’까지 10구간 50코스의 770km 거리다.

내 안에 있지만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아를 찾기 위한 길이다. 무작정 걸어보고 싶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도 싶다. 눈 부신 태양을 가슴에 안고, 파란 바다를 맘껏 바라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중년이 되도록 운동이라고는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전부였던 내가 그 머나먼 길을 혼자서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늘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느 곳에서 끝이 나는가. 창천이 바다가 되고, 창해가 하늘이 되어 뒤엉키니 자연의 신비다. 굽이굽이 바닷길을 돌 때마다 수많은 아말피해안을 만난다. 항구마다 재미있는 등대와 벽화를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주전봉수대’를 지날 때는 뉘엿뉘엿 지는 해가 애를 태운다. 햇빛에 몸을 내맡기고 가난한 시인의 안주가 되어줄 과메기에 입맛을 다셔본다. 신비로운 주상절리, 오십천 벼랑 위에 우뚝 선 죽서루와 경포대해변, 화진포 등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절경 아닌 곳이 없다. 숨이 멎을 것만 같다.

눈부신 해파랑길에도 아쉬움은 있다. 코스의 종착지와 새로운 출발점을 알리는 종합안내판과 종주를 확인하는 스탬프가 길손을 재촉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맞추어 설치한 탓에 마음을 바쁘게 만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점도 마음에 걸린다.

해파랑길 7코스의 종점은 염포삼거리다. 안내판과 스탬프가 염포산 등산로 입구에 있으니 당황스러웠다. 29코스가 끝난 용화교에서도 스탬프를 찾느라 20여 분이나 빗속을 헤맸다. 31코스는 덕봉대교에서 끝났지만, 안내판과 스탬프는 맹방해수욕장 입구에 있었다. 그 덕분에 스탬프 하나 찍겠다고 비 내리는 ‘마읍천’ 아래위를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해파랑길의 홈페이지를 야무지게 살펴보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4코스의 ‘진하해변’, 12코스의 ‘양포항’ 외 몇 개의 코스 종점은 ‘시내버스정류장’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코스가 끝난다고 스탬프가 반드시 거기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시설물은 설치하는 사람의 편의와 수월성에 우선해야 하고, 길은 길에 연이어 있다. 무엇보다 해파랑길을 걸으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도는 약속이다. 길을 정확하게 안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낯선 길을 걷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휴식과 여유, 걸어온 길에 대한 아쉬움 탓에 발길을 되돌리는 사람을 배려한다면 접근이 쉬운 곳에 설치하는 것이 여러모로 옳다. 그래야 당황하지 않고, 쓸데없이 체력을 소모하지 않는다. 스탬프 하나로 헷갈리게 할 이유가 없다.

아, 되돌아보니 11월의 해는 노루 꼬리보다 짧았다. ‘땅끝마을길’을 들어설 때만 해도 슬프도록 곱던 노을이었건만 심술궂은 어둠은 온갖 물상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손전등에 의지하여 찾은 숙소는 적막에 싸였다. 외딴 숲속의 성 같았다. 솔숲 사이로 부는 바람이 세찼고, 창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음산했다. 목청을 높이는 파도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여야 했다.

그 밤의 해파랑길이 다시 그립다.

서영수(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