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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지지불태(知止不殆)-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부장)

기사입력 : 2019-08-12 20:31:00

가난한 정치신인은 자신의 이름과 기호가 적힌 20원짜리 휴대용 성냥 15만 개를 돌렸다. 쇳소리를 연상케하는 카랑카랑한 그의 연설은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산 시민은 현역 의원 대신 ‘젊은 패기’를 선택해 전국 최연소 당선자라는 타이틀을 안겼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된 32살 강삼재 일화다.

요즘보다 당시 유권자들이 훨씬 세대 편견이 덜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분리된 울산까지 포함해 경남은 모두 20명의 국회의원을 뽑았다. 30~40대가 12명(60%)으로 절반을 넘었고, 이어 50대 7명(35%), 60대는 1명(5%)에 불과했다.

갈수록 정치신인 돌풍은 미미하다. 정치 풍토가 변하고 선거제도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인에게 불리하다. 그 제도 개편의 칼자루를 현역 의원이 쥐고 있으니 백년하청이다. 그런데도 선거 때면 으레 등장하는 ‘전가의 보도’가 있다. 속칭 ‘물갈이’로 불리는 세대 교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레퍼토리다.

민주당이 정치 신인에게 최대 20% 가산점을 준다고 하자 한국당은 이보다 높이겠다고 했다. 말이 좋아 가산점이지 ‘빛 좋은 개살구’다. 상대적으로 인지도 낮고 자금과 조직력이 부족한 신인이 임기 내내 선거운동에 매달리는 현역을 뛰어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엄청난 선심이라도 쓰듯 가산점 비율에 여야가 경쟁한 듯 매달리고 있다.

현실 정치에서 신인을 가로막는 장벽은 한둘이 아니다. 선거법이 대표적이다.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은 ‘선거일 전 13일’로 한정돼 있다. 예비후보자가 이 기간 전에 공개석상에서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거나 공약을 홍보하면 선거법 위반이다. 현역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굴이 덜 알려진 신인 정치인의 손발을 묶는 조치다. 반면 현역은 지역구 활동을 명분으로 매일 합법적 ‘사전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내년 4월 15일이 21대 총선이니 8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달 말로 끝나는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유명무실하다. 선거구제 개편과 지역구 조정 등 내년 총선 판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선거법 개정안 논의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받는 20대 국회의 헛발질이 계속되고 있다.

당사자들이야 펄쩍 뛰겠지만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에 전 국민의 분노가 쏠린 부분도 정치권으로서는 손익계산상 결코 밑지지 않을 게다. 이번 사태가 아니었다면 총선 물갈이 얘기가 한창일 텐데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오죽하면 여당에선 악화한 한일관계가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까지 했을까. 나라야 어찌 되든 국익이 걸린 문제까지 총선용 땔감으로 사용하겠다는 속셈이다.

정치권의 신인 가산점 논의에 다수 현역은 콧방귀를 뀐다. 오히려 지역구에 더 자주 갈 명분이 생겼다고 역설한다. 인위적 물갈이에 대한 불편한 속내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지역 기반이 약한 신인으로 선거 한번 해보라는 배짱이다.

신인이라고 모두 개혁적이고 참신한 것만도 아니다. 다선이 깨끗하고 유능한 정치를 한다면야 누가 뭐라겠나. 다만, 3선만 해도 12년이고 5선이면 20년이다. 유독 이곳만 임기 무제한이다. 이들의 경력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좋은 학벌에 더해 일반인은 한 줄 걸치기도 어려운 자리를 이리저리 전전하며 전리품처럼 주렁주렁 꿰차고 있다. 그러고도 늘상 ‘딱 한 번만 더하겠다’는 말을 되뇐다. 만족을 알아야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 평범해 보이지만 만고불변의 진리다.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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