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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게으름- 강지현(편집부 차장)

기사입력 : 2019-08-15 20:17:55

우리나라에서 게으름은 죄악이다.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읽으며 놀고먹는 베짱이를 게으름뱅이라 손가락질한다. 개미를 통해 부지런함의 중요성을 깨친 우리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라고 스스로를 몰아친다. 소파에 누워 쉴라치면 왠지 모를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쉬자고 떠난 휴가지에서조차 죽자고 움직인다. 종일 뒹굴고 싶다는 생각은 잠시. 어느새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외친다. ‘게으름 부리지 말고 어서 나가. 여기까지 와서 누워만 있을 거야?’

▼‘게으름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게으름은 놀랍게도 인류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우리가 멍 때리거나 게으름을 부릴 때 뇌는 더 창의적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만능 예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프로 게을리언’이었다. 크기 53㎝×77㎝의 모나리자 초상을 완성하는 데 무려 16년이 걸렸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불리는 로시니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언을 남긴 철학자 데카르트도 실은 엄청난 게으름뱅이였다고 전해진다.

▼최근 중국에서는 란런(懶人·게으름뱅이) 경제가 뜨고 있다. 지난 5월 중국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신선매장 허마셴셩이 손님 대신 새우껍질 발라주는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란런 상품으로는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자동창문청소기, 양말세탁기, 가정간편식 등이 꼽힌다. 게으름뱅이 경제를 대표하는 모바일 앱 기반 음식 배달 서비스는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추세다. 이젠 ‘게으른 손님’이 왕이다.

▼나무늘보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포유류 중 가장 느리고 게으른 동물이다. 하지만 게으른 대신 날카로운 발톱을 특화시켰다. 나뭇가지에 더 단단히 매달려 버티기 위해서다. 생존을 위한 비장의 무기인 셈이다. 반대로,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어쩌면 ‘게으름’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게을러져라.”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쓴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이다.

강지현(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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