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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축사 갈등’ 의령 정동들 가보니

“농지 한복판에 축사 들어오모 인자 농사는 못짓는기라”

5개월째 공사 막은 동네 어르신들의 ‘천막 절규’

기사입력 : 2019-08-25 21:04:14

의령군 용덕면 정동마을과 의령축협의 ‘소축사 건립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소축사는 1만7144㎡ 농지에 들어선다. 정동마을 주민들은 농지가 있는 현장에 천막을 치고 공사 중장비가 들어오는 것을 실시간 감시·저지하고 있다.

대부분 70대인 주민들은 한여름 땡볕 고통 속에 소축사 공사를 막고 있고, 반면 의령축협은 소축사 공사를 제때 추진하지 못해 심각한 재정적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5개월 넘게 마찰을 빚고 있는 의령 소축사 건립 사태를 현장에서 분석해봤다.

의령군 용덕면 정동마을 주민들이 25일 의령축협에서 추진 중인 소 축사 건립 예정지 앞에서 천막을 치고 트랙터로 진입로를 막은 채 공사 중장비가 들어오는 것을 감시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의령군 용덕면 정동마을 주민들이 25일 의령축협에서 추진 중인 소 축사 건립 예정지 앞에서 천막을 치고 트랙터로 진입로를 막은 채 공사 중장비가 들어오는 것을 감시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농지 한복판에 소축사가 말이 됩니까”= 지난 22~23일 두 차례 찾은 소축사 건립 예정지 주변에는 나이 70대인 정동마을 여성 주민 5~6명이 천막을 치고 공사 강행을 감시하고 있었다. 천막을 기준으로 양쪽 100m 부근 농로에는 트랙터가 공사현장 진입을 가로막고 있었다. ‘농민 생존권 압살하는 의령축협 각성하라!’, ‘청정농업 재앙 부르는 대규모 축사 반대!’ 등 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들이 눈에 띄었다. 혹시 불상사가 발생할까 주변을 경계하는 경찰 순찰차도 보였다. 특히 의령축협 측이 창원지법 마산지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내용의 푯말 2개가 주민들을 경고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5개월째 공사 저지를 하고 있는데 기자가 찾아온 건 처음이다”며 소축사로 인한 그동안의 고통과 억울함을 쏟아냈다.

70대 한 여성주민은 “축협에서 계속 공사를 하려고 진입하는 굴착기와 컨테이너를 수차례 저지했다. 최근 태풍 때도 공사를 하려고 해서 막았다. 우리가 다 할매들인데 너무 힘들다. 한여름 때는 2~3명이 땡볕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고 경과를 말했다.

축사 예정지 주변 전체 농지는 동쪽에 남강을 끼고 있는 세로 2㎞, 가로 250m 형태로 가운데 농로를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축사 부지는 여러 농지들에 둘러싸여 있다.

주민들은 “주변 농민들에 전혀 이야기도 하지 않고 농지 한복판에 소축사를 만드는 게 말이 됩니까. 농사를 어떻게 지으란 말입니까. 아파트단지 한복판에 소축사를 짓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외지인 농지만 매입해 추진”= 공사현장 주변 농지들은 쌀농사와 밭농사, 비닐하우스를 병행한다. 복숭아와 멜론 등 농산물을 재배한다. 바로 옆에 남강이 흐르기 때문에 가뭄 걱정 없는 농사 최적지이다.

한 주민은 “정동마을의 농업터전인 농지를 똥구덩이로 만들려 한다”며 “공사를 강행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전혀 논의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몰랐던 이유를 묻자 “소축사가 들어서는 농지 소유주들은 외지 사람들이다. 마산에 사는 사람들인데 자기들끼리 의령축협에 땅을 팔고 가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축사가 들어서는 위치는 정동리 1037~1041로 5필지 1만7144㎡ 규모이다. 당초 축협이 밝힌 4필지 1만6800㎡보다 더 컸다. 5필지 모두 현지 마을 주민 소유는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 의령축협은 2년 전인 2017년에 이들 부지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지 위쪽으로 한 건물이 보였다. 소축사였다. 주민들은 “예전에 싸움소 훈련장을 만든다고 해서 반대를 하지 않았는데, 뒤늦게 소축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막을 방법이 없었다”면서 “이번에 또 축사가 만들어지면 앞으로 돈사, 양계장도 다 들어올 것인데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반발했다.

◇“보상 바라고 하는 게 아냐”= 정동마을 주민들의 소축사 건립 반발은 다른 일반적인 분뇨·악취를 우려하는 소극적 반발 집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소축사 백지화가 아니고는 다른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주민들은 마을발전기금 등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 반발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주민들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으려는 보상금 욕심에 축사를 반대한다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는데, 마을주민들은 진정으로 보상 같은 걸 원하지 않는다”면서 “이전처럼 좋은 농지에서 농사로 생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축사 문제는 삶의 터전인 농지를 잃을 수 있는 목숨과도 같은 문제이다”며 “보상금 같은 소리로 주민들을 매도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김호철 기자 keeper@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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