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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이순신은 바다를 읽었지 결코 무모하지 않았다-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기사입력 : 2019-09-03 20:29:32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문제로 한일관계가 끝없이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부터 국민 개개인까지 온 나라가 반일운동을 목청껏 외치고 있다. 정유재란 때 남은 12척의 배로 400여 척의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의 명량해전(양력 1597년 10월)을 들먹이는가 하면, 대한제국 때의 국채보상운동(1907~1908), IMF 당시 금모으기운동(1997) 등의 국민적 단합을 외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애국심, 특히 항일운동은 가장 멋진 구호다.

그런데 허공에 뜬 이런 구호밖에 내세울 게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무리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라지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저 내뱉는 말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일본과 연계하여 삶을 영위하고 있는 수많은 기업·여행업계·요식업계는 물론이고, 일본 현지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처지는 과연 어떨까?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어가는 개구리들의 처지도 깊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위기일수록 알맹이 없는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와신상담의 각오로 냉철하게 처신해야 한다. 두 가지 측면을 짚어보자.

첫째, ‘구호’가 아니라 핵심은 ‘힘’이다. 과거부터 줄곧 국제무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힘이다. 특히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마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부터는 공개적으로 자국이익우선주의만을 앞세우고 있다. 맏형이 집안 분위기를 아우르는 솔선수범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앞세우는데, 그 아우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트럼프 이전에도 그랬다. 2차 세계대전 후 전범국인 독일은 동서독으로 나뉘어졌으나, 우리 한반도는 일본 대신에 둘로 나눠진 희생양이 돼버렸다. 물론 미국과 러시아의 자국이익우선주의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반도의 분단을 기정사실로 해버리고 그 시점부터 출발하여 북한을 주적으로 보고 반공의식과 애국심을 강조해 왔다. 특히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북핵의 위험성을 시도 때도 없이 부각시켜 한국인 대부분이 세뇌돼버렸다.

둘째, 국론마저 분열돼 있는 작금에 애국심으로 국민들만 희생시키려고 하지 말고, 전화위복으로 삼아 국가의 장래를 위해 체계적인 숙고를 해야 한다. 36년이나 지배를 당했고, 그들로 인해 한반도가 분할돼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적반하장이 유분수라 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일본이라는 것을 한국인은 다 안다. 아니 일본인들도 그럴 것이다. 아베를 포함한 극우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단지 모른 체할 뿐! 죽이도록 밉고 치를 떨지라도 지금 중요한 것은 발톱이 강력하게 자랄 때까지 움츠리고 있어야 한다. 구호가 아니라 강력한 힘을 가지기 위한 플랜을 보여줘야 한다. 약한 힘이 구호만 외쳐댄다고 뭐 그리 강해지겠는가. 무능한 장수가 질 게 뻔한 전투에서 애국심만 앞세워 수많은 부하들을 죽게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를 것인가!

이순신은 결코 무모하지 않았다. 그는 바다를 정확하게 읽고 지혜를 모아 체계적인 전략을 세웠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지신명께 기도를 드린 덕분도 아니었고 병사들의 애국심에만 기댄 덕분도 아니었다. 반대로 권율 장군에게 몽둥이를 맞고 비책도 없이 무모하게 출전한 원균은 칠천량해전(거제 칠천도, 1597년 8월)에서 대패하여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거북선(총 3척)을 포함한 대부분의 조선 군함과 병력들을 잃고 말았다. 수많은 백성과 병사들이 죽어나갔지만, 졸장 원균을 두둔했던 윤두수 등 서인세력들은 물론이고 임금을 포함하여 조정의 그 누구도 패배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한 사람을 죽이는 건 비극이어도 (통치라는 명목 하에) 1만 명을 죽이는 것은 통계 수치일 뿐이다”라는 스탈린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브레히트가 쓴 희곡 〈갈릴레오의 생애〉에 나오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나라여!”란 일침이 자꾸 떠올라 미칠 지경이다.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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