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현대사 이해 핵심 키워드, 석유

■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9·11 테러, 미국 금태환 체제 붕괴 위기 등

기사입력 : 2019-09-05 22:04:07

279만3000배럴. 2016년 기준 한국에서 하루 평균 소비된 석유의 양이다. ‘석유’ 하면 보통 휘발유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에 이 많은 소비량의 상당 부분이 운송 수단의 연료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운송에 사용된 석유는 32.6% 정도이고, 절반이 넘는 52.8%는 플라스틱, 고무, 화학섬유 등을 만드는 석유화학 산업에서 쓰인다. 석유 공급이 중단되면 운송은 물론이고 소비재의 상당 부분이 생산을 멈출 것이기 때문에 석유가 현대인의 경제 행위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석유의 중요성은 개인의 경제적 삶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4차례의 중동 전쟁, 진주만 공습, 9.11 테러,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 현대사의 수많은 전쟁과 테러가 석유 때문에 벌어졌다.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독일과 프랑스가 화해하여 유럽연합을 설립하고, 1970년대 이란이 친미 국가에서 반미 국가로 돌아서고, 1973년에 서유럽, 한국, 일본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을 비판하며 친아랍 성명을 내고, 1980년대 미국이 세계화와 금융화를 추진하고, 2003년 블레어가 ‘부시의 푸들’이라 불리면서까지 미국의 이라크전을 도왔던 배경에도 석유가 있었다.


저자는 석유가 단순한 연료나 원료 정도가 아니라 국제정치와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동인이었기 때문에 석유를 현대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꼽는다. 석유가 정치, 경제, 외교 등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현대사의 주요 장면 33가지를 보여주면서 이를 설명한다. 이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1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현대사에서 이해가 되지 않고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지식이 꿰어지고, 익히 알고 있었던 문제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먼저 사우디가 1970년대 닉슨 대통령 시절 브레튼우즈(금태환) 체제가 흔들리며 붕괴위기를 맞았던 미국 달러를 지켜준 것도 석유가 국가 간의 외교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서방과 이슬람 간 문명의 충돌로 인식되고 있는 9·11 테러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문명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나 테러를 일으킬 만큼의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중동 지역 이슬람교도들의 강력한 반서구 정서의 근원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저자에 따르면 이 사건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이스라엘과 분쟁이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였고, 그 이후로 진행된 석유로 인한 갈등과 분쟁, 부패와 빈곤이 싸움의 배경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석유의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입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2017년 트럼프가 취임한 이래 미국의 대외 정책이 대단히 공격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배경에도 석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셰일 혁명’이다. 셰일 오일 시추 기술은 2000년대 초반에 개발됐고 2018년에 이르러 미국은 하루 11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등극한다. 저자는 이것이 미국의 외교 정책이 달라진 배경이라고 본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중동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중동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셰일 혁명으로 자급은 물론이고 수출까지 가능해지면서 미국은 중동에 대해 예전과 같은 절박함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됐다.

저자는 석유는 전 시대의 유물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명백한 트렌드이고, 최소 한 세대의 범위 안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미래의 비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지웅 지음, 부키 펴냄, 1만8000원.

이명용 기자

  • 이명용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