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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의 미래는 있는가?- 강재규(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기사입력 : 2019-09-15 20:34:00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한 기운을 느낄 만큼 계절은 이미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태풍 링링은 텃밭 어귀에 심어둔 대추나무를 마구 흔들어 탐스럽게 달려있던 대추들을 모조리 땅에 떨어뜨렸다. 안쓰러운 농부의 마음으로 떨어진 대추를 주워 물에 깨끗이 씻어서 햇빛에 늘어두었다. 아내는 내가 늘어둔 대추를 쪼개 속을 살피더니 벌레가 다 먹어 성한 대추를 찾기 힘들다며 당신 속은 쓰리겠지만 버리란다. 나도 대추 속을 확인해 보니 성한 것이 거의 없었다.

바깥 모습은 멀쩡한데 여전히 벌레들이 살아서 대추 속을 파먹고 있었다. 한 번도 농약을 치지 않은 탓이다. 무농약 유기농 농사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매번 절감한다. 과일이나 채소도 농약을 치지 않으면 온갖 벌레들과 균들이 침입해 농작물을 제대로 수확할 수 없다. 올해는 김장용 고추를 수확해보겠다며 봄에 많은 양의 고추 모종을 사서 심었지만, 탄저병과 벌레들의 서식처가 되어버려 고추 농사도 이미 실패했다.

가게에 진열된 윤기가 흐르는 멀쩡한 과일들이나 채소들을 보면, 요즘은 농부들의 땀과 정성과 더불어 수없이 뿌려졌을 농약들이 떠오른다. 벌레와 균들을 퇴치한 농약들은 땅으로 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그런 땅과 물은 괜찮을까?

벌레 먹은 대추지만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짜낸 생각이 대추 한 알 한 알을 작은 칼로 성한 곳을 도려내고 벌레 먹은 부분은 제거한 후 말렸다. 그렇게 말끔히 손질하는 데 서너 시간이 걸렸다. 경제적으로 판단하면 참으로 비경제적이고도 비효율성의 끝판왕이다. 하지만 이게 농부의 마음이다.

농부들은 쌀 한 톨이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거기에 쏟은 땀과 수고를 알기에 허투루 곡식 한 알도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내 부모님도 논밭 서너 마지기, 농사용 일소 한 마리로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도 시켰다. 1년에 한 마리씩 낳는 송아지는 가장 큰 살림 밑천이었다. 송아지 판 돈은 자식들 학비 대느라 진 빚을 갚는 데 썼다. 아마 우리 집 소는 13마리 송아지를 낳고 우리 가족과 이별한 것으로 기억한다.

진영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100여 평의 텃밭을 가꾸고 있다. 괭이와 삽으로 땅을 일구고, 이랑과 골을 만들어 계절 따라 씨앗이나 모종을 넣고 수확을 하는 작은 농부의 삶이다. 지금은 농사의 많은 부분이 기계화되어 농사일이 예전보다는 수월해지긴 했지만, 나는 농사일이 군대에서 하는 100㎞, 200㎞ 행군만큼 힘든 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도와 간간이 하던 농사일은 그만큼 힘든 경험이었다.

농자지천하지대본(農者之天下之大本),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농업, 농사는 사라질 수 없다. 쌀, 보리, 밀, 채소, 과일 없는 인간의 삶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민, 농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농이나 특수농이 아니고서는 농사지어 자식을 키우고 공부시키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농업, 농민을 살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농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길이다.

지난여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만난 드넓은 초지와 들판은 여기가 농업국인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쌀과 밀이 무기가 되는 세상이 온다 해도 이들 나라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점점 줄어드는 김해평야가 오버랩되었다.

강재규(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