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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668) 제24화 마법의 돌 168

‘에이그 철없는 것…’

기사입력 : 2019-09-16 07:58:51

이재영은 한강을 건널 수 없게 되자 망연자실했다. 한강을 건너기 위해 몰려온 수많은 피란민들도 어쩔 줄을 몰라했다. 비까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이재영은 비를 흠뻑 맞았다.

“어떻게 해요?”

허정숙이 손으로 빗물을 훔치면서 물었다.

“우선 비부터 피하고 봅시다.”

이재영은 허정숙을 데리고 차를 세워 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다행히 골목에 세워 둔 차가 그대로 있었다. 차에서 빗물을 닦고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피란민들이 비를 피해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였다.

“집으로 가요.”

이재영은 허정숙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유 고생했네.”

허정숙이 수건으로 빗물을 닦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말자는 속옷 차림으로 안방에서 자고 있다가 허정숙에게 야단을 맞았다. 그러나 이재영을 보고는 유혹이라도 하듯이 배시시 웃었다.

‘에이그 철없는 것….’

이재영은 태평한 말자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전쟁이 일어났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재영은 가슴이 무거웠다.

‘어떻게 하다가 국군이 패한 거지?’

이재영은 옷을 갈아입고 생각에 잠겼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멀리서 총소리와 포성이 은은하게 들렸다. 이재영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총소리와 포성에 불안감을 느꼈다.

‘내일은 어떻게 하지?’

다리가 끊어졌으니 강을 건널 수가 없다. 그러나 이대로 머물러 있을 수도 없었다.

“내일은 배를 찾아봐야겠어.”

허정숙과 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그럼 배로 강을 건넌 뒤에 걸어서 남쪽으로 갈 셈이에요?”

“일단 강을 건너고 봐야지.”

이재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정숙은 마땅치 않은 기색이었다. 이튿날은 날이 개었다. 집을 나와 거리를 살피자 거리가 온통 인민군들로 들끓고 있었고 붉은 인공기가 나붙어 있었다. 이재영은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너무나 빠른 변화였다. 인민군을 가득 태운 트럭이 꼬리를 물고 이동하는 것이 보이고 탱크가 달리는 것도 보였다. 이재영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재영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이 공산당 치하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공산당 치하에서는 자본가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갑시다.”

이재영은 어떻게 하든지 남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싫어요.”

허정숙은 죄가 없으니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이재영이 설득을 했으나 듣지 않았다.

“떠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오?”

“집을 지킬게요. 피란을 가봤자 소용이 없을 거예요.”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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