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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669) 제24화 마법의 돌 169

“누구든지 강을 건너지 못하오”

기사입력 : 2019-09-17 07:56:17

허정숙이 고집을 부렸다. 허정숙은 의외로 완강했다.

“사람들이 전부 피란을 가는데 혼자 집에 있겠다는 말이오?”

“피난 가기 싫어요. 더운데 생고생만 할 거예요.”

허정숙은 이재영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재영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집을 나왔다. 양복을 입지 않고 허름한 농부의 옷을 입었다. 거리로 나오자 곳곳에 인민군들이 보였다. 거리는 인민군들 외에 텅 비어 있었다. 피란민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이재영은 한강까지 터벅터벅 걸어서 갔다.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한강의 나루터에는 배가 있었으나 인민군들이 지키고 있었다. 나루터 일대에는 꽤 많은 피란민들이 몰려와 불안한 눈으로 나루터를 살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시오. 누구든지 강을 건너지 못하오.”

인민군들이 피란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말했다. 피란민들이 웅성거리고 흩어졌다.

‘어떻게 하지?’

이재영은 나루터를 바라보다가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나루터 어디에서도 배를 탈 수 없었다.

‘강을 건널 수 없겠구나.’

이재영은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허정숙이 집에 보이지 않았다.

“아줌마는 어디에 갔어?”

말자에게 물었다. 말자는 혼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내무서에서 데리고 갔어요.”

말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무서?”

“내무서에서 아저씨를 잡으러 왔어요. 아저씨가 없어서 아줌마를 데리고 갔어요.”

“나를 잡으러?”

이재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아저씨도 여기에 있으면 잡혀 가요.”

“그럼 어떻게 해?”

이재영은 갈 곳이 없었다. 인민군에게 잡혀갈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불안했다.

인민군에게 잡혀 간 허정숙이 어떤 곤욕을 당하고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집에 있는데도 인민군들이 잡으러 올까봐 불안했다.

“아저씨, 내가 전에 지내던 곳이 있는데 거기에 숨어요. 그리로 갈래요?”

이재영이 불안해하자 말자가 눈웃음을 치면서 물었다.

“어딘데?”

“신당동이에요. 야산에 동굴이 하나 있어요. 거기는 사람이 오지 않아요. 일본인들이 방공호로 판 곳이에요.”

이재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38선 이북에서 지주와 부자들을 숙청했다는 이야기는 무수히 들었었다. 인민군에게 잡히면 그도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말자야, 그럼 나 좀 거기에 숨겨 줄래? 나중에 신세를 꼭 갚을게.”

이재영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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