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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거짓말의 기술- 조윤제(정치부 부장)

기사입력 : 2019-09-18 20:19:42

거짓말도 삶의 윤활유가 된다. 하지만 잘못하면 파멸이 따르기도 한다. 나이 먹을수록 거짓말을 화려하게 하고 싶을 때가 많다. 거짓말해서라도 돋보이고 싶고, 궁지 몰릴 일 있으면 거짓말 잘해서 빠져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거짓말의 미학

거짓말이 삶의 윤활유가 된다는 것은 매년 4월 1일 만우절이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만우절은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에게 가벼운 거짓말로 서로 속이고 속으면서 즐거워하는 날이다. 만우절 거짓말은 가벼워야 하며, 속이고 속고도 즐거워야 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어릴 적 생각해 보면, 만우절 앞두고 며칠 동안 생각에 빠진다. 무슨 거짓말로 친구들을 속이지, 어떤 말을 하면 재밌어 할까, 다른 애들도 나와 똑같은 내용은 아닐까, 위트 있으면서 뭔가 독창적이어야 할 텐데…. 친구들 속일 궁리에 밤잠 설칠 정도로 즐거움 공유할 거짓말 찾기에 시간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진짜로 속이려거나, 사람 목숨을 소재로 하거나, 누군가의 인격을 깎으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게 만우절의 약속이다. 만우절만 되면 거짓신고로 소방서·경찰서가 바쁜 것도 풍속으로 여겨질 정도니 거짓말에 미학이 숨어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거짓말의 파멸

거짓말 잘못하면 목숨을 내놔야 할지도 모른다.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을 한번 보자. 어느날 양들이 풀 잘 뜯어먹고 놀고 있으니 양치기 소년이 너무 심심했던 모양이다. 급기야 늑대가 나타났다며 거짓말을 했다. 동네 어른들은 양치기 말에 속아 하던 일 멈추고 몽둥이와 무기를 들고 헐레벌떡 모여들었다. 이 모습을 본 소년은 너무 재미있어 깔깔거렸고, 어른들은 다시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주의를 주고 돌아갔다. 이후 소년은 똑같은 거짓말을 여러 번 했고, 어른들은 계속 속았다. 결국 소년의 말대로 늑대가 진짜 나타났다. 소년은 절박한 목소리로 “늑대가 나타났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외쳤지만 동네 어른들은 양치기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거짓말 전력이 너무 많아 사실을 외쳐도 아무도 믿지 않은 것이다. 늑대는 양들을 물어 죽이고, 눈물 질질흘리던 소년까지 죽이고 말았다. 어릴 적 거짓말하지 말라며 가장 많이 들은 교훈적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다.

#거짓말의 기술

거짓말해야 하는 상대는 아마도 아내 혹은 회사 상사, 부모님, 선생님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쉽게 넘길 수 없는 까다로운 분들이다. 아내에게 거짓말 잘못하면 국물도 없을 것이고, 회사 상사에게 거짓을 고하면 가족 생계가 위태로울 수 있다. 부모님은 알고도 속아주지만, 선생님은 교육적 차원에서 반드시 징계를 가한다. 안 하면 가장 좋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면 그 기술을 평소에 익히면 좋겠다. 어떤 경우가 언제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표정에 변화가 없어야 한다. 떳떳한 척해야 한다. 눈썹과 눈동자가 흔들려서도 안 된다.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고 태연하게 말해야 한다. 입술이 떨리거나 손이 흔들리면 실패다. 타임을 봐서 짜증도 내야 한다. 위협적이지 않은 선에서 인상 찡그리는 것은 작전이다. 말의 음정과 음질이 평소와 같아야 한다. 무엇보다 최고의 기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줄 아는 뻔뻔함. 이 기술을 터득한다면 어떤 고난이 닥쳐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조윤제(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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