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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낙타를 꿈꾸며- 이선중(시인·문학박사)

기사입력 : 2019-09-19 20:30:00

몽골로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온순한 동물입니다.”

낙타를 가리키며 현지인이 한 말이다. 나는 객관적이지 않을 뿐더러 편협하고 단정적인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양이나 사슴, 소나 토끼 같은 순하디순하고 사랑스러운 초식동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희한하다 못해 흉물스럽게 생긴 짐승을 가장 온순하다고 하다니, 이건 제 식구 감싸기 식의 이기적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낙타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만지고 등에 올라탄 채, 얼마간 사막의 모랫길을 걸어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현지인의 말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양, 사슴, 토끼 등 우열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순하고 사랑스러운 초식동물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초원이나 여기저기 먹거리가 풍성하게 널려있는 숲속 같은 좋은 환경에서 서식한다.

그런데 만약 그 동물들이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물기라곤 흔적조차 없는 열사의 공간에 놓인다 해도 여전히 낙타처럼 순하기만 할까. 게다가 사람과 짐까지 싣고 몇 날 며칠을 모래와 바람을 헤치면서 걷고 또 걸어야 한다면, 그 혹독한 천형을 마소가 견뎌낼 수 있을까. 아마 아무리 순종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지쳐 죽거나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도망치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한 사람의 품격과 인성을, 타고난 본성보다는 그가 가진 조건이나 여유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여건을 갖춘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가진 여유에 기대어 넉넉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가진 넉넉한 여건을 좋은 인성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의 참모습은 가혹한 조건에 놓였을 때 오롯이 드러나는 법이다. 돈이 떨어지거나 몸이 아프다든지 극한 육체적 고통이 주어지거나 열악한 환경에 놓일 때, 그 사람의 내면에 숨겨진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낙타의 성글고 거친 털을 만지고 두툼한 입술 사이로 흘리는 타액과 문드러진 코, 유달리 긴 속눈썹을 보면서 나는 가혹한 환경에 순응하며 인간에 절대복종하는 이 가여운 생명체에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낙타에게서 팔순을 넘기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는 나를 효자라고 포장하고 다니신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나는 어머니가 우아하고 나에게 부담스럽지 않았을 때나 효자였다. 어머니가 점점 쪼그라들고 추해진다 여겨지면서 어머니의 손을 잡기보다는 눈살을 찌푸렸던 적이 더 많았다. 절대적 존재였던 어머니가 긴 세월 동안 사막과 같은 세상 속에서 나를 위해 온몸을 바치느라 얻은 상처와 흔적을 외면하며 지내고 있었다.

‘지상에서 가장 온순한 사막의 그리스도….’

나는 낙타를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나에게 낙타이며 그리스도이시다. 내일은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서 당신의 거칠고 성근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옷을 단정하게 차려 입혀서 근교에 바람이라도 쐬러 가야겠다. 허리가 굽어서 더욱 왜소해진 노구를 부축하고 낙타의 무릎처럼 굵어진 거친 손을 꼬옥 잡아드릴 것이다. 오가는 길에 경치가 좋은 곳에 들러서 구경도 하고 국물이 구수한 곰탕이라도 한 그릇 드시게 해야겠다.

이선중(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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