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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683) 제24화 마법의 돌 183

“돈을 조금만 주시면…”

기사입력 : 2019-10-08 07:57:47

이재영은 트럭을 한 대 사서 시골로 돌아다니면서 쌀을 사들여 남대문에서 팔았다.

미월도 돌아왔다. 그녀는 한동안 시골에 숨어 있었다고 했다. 요정도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전쟁으로 어수선했으나 돈을 벌어야 했다. 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재영은 걸어서 다녀야 했다. 남대문에서 해가 진 뒤에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 금세 사방이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도와주세요.”

“돈을 조금만 주세요.”

어두운 거리를 걸어서 돌아올 때면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이 보였다. 미군이 여자들에게 달러를 흔들면서 몸을 팔 것을 요구한다고도 했다.

이재영은 여자들이 호객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술집이나 유곽 같은 곳에 가야 여자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리에서 여자들이 몸을 팔았다. 집에 남편은 없고 쌀이 떨어지자 거리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애들이 굶고 있어요.”

골목을 지날 때 한 여자가 말을 건넸다. 이재영은 걸음을 멈추었다. 날씨는 쌀쌀맞고 거리는 어두웠다.

“돈을 조금만 주시면….”

한 여자가 이재영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이재영은 여자의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 여자의 슬픈 눈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돈을 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아시면서… 긴 밤도 보낼 수 있어요.”

이재영은 여자에게 돈을 꺼내주었다. 여자가 웃으면서 이재영을 데리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에 여자가 살고 있는 작은 방이 있었다. 여자는 이재영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자 요 위에 누워 치마를 걷어 올렸다. 어느 방에선가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재영은 옷을 벗고 여자에게 엎드렸다.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녀들은 미군에게도 몸을 팔았다.

이재영은 장사를 하고 돌아올 때마다 여자들을 샀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습관적인 것일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일 수도 있었다.

날씨는 쌀쌀했다. 굶주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추운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재영은 때때로 여자들과 긴밤을 보낼 때도 있었다. 여자들은 씀씀이가 헤픈 이재영이 다시 찾아와 주기를 바랐다. 그가 오면 아양을 떨고 교태를 부렸다.12월이 되자 날씨가 더욱 추워졌다. 라디오와 신문이 중공군이 개입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국군과 미군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재영은 이철규와 상의하여 쌀을 일단 대구로 실어보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요정의 기생들도 모두 부산으로 피란을 보냈다. 미군과 국군이 평양에서 철수하자 이정식도 대구로 내려보내고 이재영도 내려갈 준비를 했다.

“김경숙씨는 어떻게 할 거요? 나는 피란을 갈 생각인데….”

이재영은 피란 준비를 마치자 김경숙에게 물었다.

“저는 피란 갈 곳이 없어요. 여기서 지내게 해주세요.”

김경숙이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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