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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를 위한 변명- 서영훈(뉴미디어부장·부국장)

기사입력 : 2019-10-16 20:23:33
서영훈 뉴미디어부장·부국장
서영훈 뉴미디어부장·부국장

나의 정치적인 성향을 구태여 밝힐 생각은 없다. 정치적인 성향이라는 게 이 칼럼을 읽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곡해할 가능성만 높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보니 보수니 서로 편을 가르는 게 유행이지만, 그 편도 제대로 갈라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정말 진보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 보수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이 그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그러니 내가 진보다 보수다 해봤자 내 존재의 가벼움에 비춰 관심을 받지도 않을 테고, 더구나 괜한 말을 하여 오해를 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 글을 쓰려면 오랜 기간 동안 기자로 생활해 온 나 자신에 대한 반성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게다. 그동안 나태하여 팩트 확인을 게을리하고, 감정이 앞선 나머지 꼭 필요하지도 않은 글을 쓰며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하고, 또한 사회현상 근저의 큰 흐름을 무지로 말미암아 놓친 적이 적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반성을 해도 내일, 모레 또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하여 저지를 수 있다는 것도 나의 한계다.

그래도 이 시기 포털사이트나 소셜미디어 등에 넘쳐 나는 ‘기레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아시다시피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다. 국회의원과 개를 합친 국개의원과 마찬가지다.

‘기레기’는 포털사이트와 소셜미디어의 댓글에 주로 올라온다. 하고많은 것 중에서, 오늘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올라 있는 내 친구의 메시지를 보자. 이 친구는 페이스북을 통해 맺어진 친구지만, 그의 메시지에 자주 ‘좋아요’를 누르며 호응을 했기에 나에게는 절친이기도 하다. 이 친구는 모 방송사의 ‘고교생 논문 저자 1218명’ 뉴스의 한 장면을 캡처한 사진과 함께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처럼 난리를 치더니…”라는 글을 올렸다. 조국 장관 딸의 논문 저자 등재와 관련, 웬만한 사람들은 다 하는 것을 빌미로 조국을 장관직에서 끌어내렸느냐 하는 투로 읽힌다. 이 메시지에는 “조국장관 다시 오라는 얘기여 뭐여, 기레기들” “저 때는 거의 다 그렇게 한 거였는데…. 특별한 것처럼 만들었으니…”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 메시지와 댓글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방송사 뉴스가 나온 것은 조국 장관이 사퇴하기 한 달 전인 지난달 11일이었다. 1218명이라는 것도 고교생 누구나 논문 저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수가 아니다. 지난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2년간 논문 저자로 등재된 고교생 1218명은 한 해 50만명 안팎인 대입가능자원의 0.02%에 불과하다. 또 다른 사람이 그랬다고 하여 그 잘못이 덮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 확인을 제대로 않고, 인용하고 싣고 싶은 말이나 데이터만 골라 쓰며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기레기들이 쓴 쓰레기 같은 기사가 넘쳐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는 기사를 두고도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기자를 기레기라고 폄훼하는 것은 또 다른 사실의 왜곡을 부를 뿐이다. 이는 결국 기레기라 부르며 특정 정당이나 단체 지지자들의 결속을 꾀하려던 ‘온라인 유력자’의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부를 것이다.

서영훈(뉴미디어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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